국내 여행

제주, 6. 추사유배지와 새별 오름

좋은 아침 2021. 12. 30. 08:15

추사 유배지는 복원된 대정현성의 한쪽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詩, 書, 畵 분야에서 독창적이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 예술가였던 추사는 

55세 되던 해에 당쟁에 연루되어 이곳 제주의 대정현에서 8년 3개월 동안 유배 생활을 하였지요.

 

 

주차장에서 유배지로 가는 길에는

 

 

그가 좋아했다는 수선화가 줄지어 피어 있고 

 

 

그 입구에는 

 

 

추사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정원에는

관기에서 양인으로 환속한 후 물산객주로 큰돈을 벌었던 김만덕이

흉년의 도민들을 구휼했다는 선행을 전해 듣고

추사가 그의 후손에게 써 주었다는 ‘恩光衍世(은광연세),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뻗어간다’는 편액과 

 

 

그가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귀한 책을 중국에서 구입, 보내오던 제자 이상직에게 고마움을 담았던 수묵화, '세한도',

 

 

               또 다른 제자인 화가 소치가 그린 추사의 인물도, '완당선생해천일립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추사 유배지의 초가 앞에 '추사김선생적려유허비'를 세우고 

 

 

집터만 남아 경작지로 사용되던 추사 처소를 1984년 집주인 강도순의 증손의 고증에 따라 복원하였습니다.

중죄인에게 내려진 형벌, 가시나무 울타리의 위리안치 상황도 그대로 연출해 놓았네요.

 

 

당시 제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밧줄로 단단히 여미어 놓은 초가지붕이며

연자방아가 보입니다. 

 

 

안에서 가족들과 같이 생활하며 추사에게 사랑방을 내 주었던 집주인 강도순은 그의 제자가 되었답니다.

 

 

높은 돌담의 한쪽에는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합쳐 놓은 돗통시를 재현해놓았습니다.

당시 제주에서는 돼지를 돗통시에 키우면서 인분을 처리하고 그 돼지의 똥오줌은 퇴비로 사용, 농사를 지었다지요.

 

 

제자가 삼천 명에 이른다 하였을 정도로 교육 활동에도 힘썼던 추사는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이상적, 강위, 허련 등 유명한 제자들을 가르쳤고

제주 유배 중에도 이 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전수하면서 지역의 학문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민규호의 기록에는 '추사가 온 뒤 글을 배우려고 찾아온 사람이 아주 많았고

두어 달 동안에 인문이 크게 열리기 시작하면서 당시 탐라의  황폐한 문화를 개척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답니다. 

이렇듯 그는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19세기 제주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학자였습니다. 

 

 

차를 아주 좋아하여 다도의 대가인 초의 선사와 평생 우정을 나누었던 그는  지역에 차 문화도 전했다지요.   

 

 

제주 유배 시기에 김정희는

추사체를 완성하고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를 비롯하여 많은 서화를 남깁니다. 

 

 

전시관으로 통하는 정랑입니다.

정랑은 제주도 전통가옥의 독특한 대문 형식으로 대문의 기능과 마소의 출입을 막는 장치이면서

집주인의 소재를 알려주는 신호였습니다.

정낭 3개가 얹혀 있으면 먼 곳에 있음, 2개는 조금 먼 곳에 있음, 1개는 집 근처에 있음을, 

정낭이 모두 내려져 있으면 집에 사람이 있음을 알렸다네요.

지금 여기 정랑은 주인이 먼 곳에 있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김정희 관련 역사자료가 전시된 추사관은 그동안 시설을 개선하느라 잠시 휴관, 올 12월 21부터 재개관 중입니다.

화~일, 09:00~18:00. 입장은 17:30까지 무료. 064 710 6802.

 

 

사전 예약에 한하여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소치의 '완당선생해천일립상' 원본과

 

 

유배생활 5년째의 작품으로 거친 필치의 '세한도'가 보입니다.

그림의 차갑고 황량한 분위기와 발문에 쓰인 구절,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가 늘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논어의 한 구절이 아주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주 추사관의 ‘세한도’는 진본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추사 연구자였던 일본인 후지츠카 치카시(1879~1948)가 1939년 복제하여 만든 

한정본 100점 가운데 하나랍니다.

 

 

해남 두륜산의 대둔사(대흥사) '무량수전' 현판과

 

 

구성미가 뛰어나다는 평의 '여균사청(如筠斯淸)', '푸른 대나무와 같은 청렴함'이라는 뜻의 글씨, 

 

 

예서체와 전서체가 가미되어 고졸한 느낌을 준다는  '마음이 넉넉한 선비가 사는 방'을 뜻하는 '풍사실( 豊士室)'까지

모두 힘 있는 골격과 울림이 강한 필력의 추사체입니다. 

 

 

추사관 2층의 '추사 영실'에서 본 추사의 강인한 인상과 부합하는 글씨체였네요.

 

 

조선왕조실록에는 추사 김정희를 두고

'젊어서부터 영특한 이름을 드날렸으나 중간에 가문이 화를 입어 남쪽으로 유배 가고 북쪽으로 유배 가며

온갖 풍상을 다 겪고 세상에서 쓰임을 당하거나 버림을 받으며 나아가기도 하고 또는 물러나기도 했으니

세상에서는 송나라의 그를 소동파에 비유하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답니다 

 

 

              제주도와 함북 북청의 10여 년 유배생활 이후 추사는 아버지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

              71세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의 지상 높이 119m, 새별오름에 왔습니다.

산불조심기간(봄철 : 2월 1일~5월 15일, 가을철 : 11월 1일~12월 15일)에는 입산이 통제되는 오름이므로

사전에 전화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애월읍사무소 : 064 799-6001.

 

 

 지난 2000년부터 매년 겨울에 

 

 

들불축제가 열리는 이 오름은 가을철의 억새로도 유명합니다.

 

 

 

정상로와 둘레길, 두 개의 탐방로 안내도를 보고 곧 정상을 향하여 걷기 시작합니다.

 

 

초반에는 평탄하지만 

 

 

곧 언덕길로 이어지는 시간, 30분.

 

 

 

멀리 흰 눈을 이고 있는 윗새 오름과 그 뒤의 한라산 정상도 보입니다. 

 

 

우리가 걷는 시간에도 여행자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양 옆으로 이어지는 제주 특유의 풍경들!

 

 

 

 

 

정상에서 

 

 

 

한라산과 바다 위에 떠있는 비양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네요.

 

 

내려가는 길 왼쪽에 제주의 독특한 장묘문화, 돌담으로 둘러싼 묘지가 보입니다. 

방목하던 마소가 들어와 풀을 뜯으며 묘를 훼손할 수 있고

진드기 구제에 목초의 생육을 위한 들불, ‘방애불’로 위험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예부터 저렇게 산담을 쌓았답니다. 

 

 

억새꽃은 아직도 화려했지요.

 

 

 

 

 

억새밭 안에는 악한 기운을 막아내는 주술 목적의 가오기(방사탑, 防邪塔)가 서 있습니다. 

주술 종교적 기능, 수호신적 기능에 위치 표시 등 제주 특유의 종교와 문화를 표현한 돌탑입니다.

이 땅의 흔하고 다듬기 쉬운 용암석을 이용하여 쌓은 독특한 형식의 탑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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