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영주, 2

좋은 아침 2021. 11. 23. 09:44

영주시 풍기읍에는 인삼 박물관이 있습니다. 

‘시간을 이어온 생명의 숨결’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인삼 전문 박물관으로

인삼 종주국인 우리나라 인삼의 역사와 그 신비한 효능을 소개하고

인삼과 관련된 유물을 통하여 건강을 염원했던 우리 선조들 삶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었지요.

 

 

삼국사기에는 성덕왕 33년(734년)에 산삼 200백 근, 효성왕 3년(739년)에 산삼 100근,

경문왕 9년(869년)에 100근을 나라에 선물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답니다.

이렇게 많은 양의 산삼을 외국에 선물한 사례는 삼국 중 신라에만 있었는데

이는 소백산에서 좋은 산삼이 많이 자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네요.

그러나 무분별한 채취로 산삼의 생산량은 줄어들고 수요는 급증하면서

고려 시대에는 산삼 공납으로 인한 백성들의 폐해가 극심해집니다.

 

 

조선 중종 37년(1541년),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은 이로 인한 백성들의 고초를 해결할 방법을 찾던 중,

 

 

소백산 자락 풍기 지역의 자연환경이 산삼을 기르는데 가장 적합한 곳임을 확인하고

금계동 일대에서 산삼 종자를 채취, 농민들에게 인삼 농사를 장려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가삼 재배가 시작되었답니다.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자란 인삼은 품질이 우수하여 조정에서는 풍기 인삼만을 찾았다는 기록도 있다네요.

 

 

조선시대 어느 시인은 인삼을 두고 

'인삼은 혈을 잘 흐르게 하여 원기를 보호, 나쁜 기운은 없애주고

눈을 밝게 하여 마음을 열어주며 약한 몸을 이롭게 하네

몸을 보호하여 크게 이롭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으니'라 노래하였다지요.

 

 

그렇듯 조상들은 인삼을 신비의 영약, 건강과 장수의 상징으로 인식하면서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여러 가지 물건에 인삼을 새겨 무병장수를 기원하였습니다. 

 

 

 

전시관 안에서는 재현해 놓은 삼밭과  

 

 

6년근이 되기까지의 성장과정도 볼 수 있습니다. 

 

 

 

조계종 고운사의 말사로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에 왔습니다.

676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왕명으로 창건, 화엄종의 중심 사찰이 되었던 절입니다. 

수 차례의 소실과 퇴락에 보수와 재건을 거치며

천 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켜온 이 절은 

양산 통도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와 함께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됩니다. 

 

 

은행나무 가로수를 따라서 일주문을 지납니다.

 

 

소백산 지역 봉황산의 부석사가 아닌 태백산의 큰 줄기로 해석한 현판과 

 

 

아직 화려함이 남아 있는 단풍을 보며

 

 

높이 4.8m의  신라시대 석조 유물인 당간지주와

 

 

천왕문,

 

 

범종루를 지납니다. 

 

 

鳳凰山浮石寺라는 현판이 보이는 범종루는 일주문, 천왕문 다음으로 맞이하는 누각식 문.

현재 범종은 별도의 범종각에 따로 있고

이곳  2층에는 운판과 목어, 법고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옆의 범종각을 지나

 

 

범종루와 함께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누각,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으로 들어섭니다.  

 

 

무량수전 앞 석등은 국보 제17호. 

 

 

높이 2.97m인 이 신라시대의 팔각 석등은

상하 비례의 교묘함, 조각의 정교함에서 그 시대 석등 중 최고의 걸작이랍니다.

4면에 새긴 보살입상은 천 년 세월에도 여전히 그 섬세함이 남아 있습니다.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은 충남 예산의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두 글자씩 세로로 내려쓴 무량수전 현판은 공민왕의 글씨랍니다.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이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건축기법, '배흘림기둥'을 다시 바라보았지요.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는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의

이 의젓하면서도 너그러운 아름다움을 나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을 몇 번이나 되새겼다'

 

했던 고인의 유려한 문장을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 없다'했었지요.

 

 

그 안,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는 위치의 본존불, 소조여래좌상이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 중앙에 자리한 부처가 아니었거든요.

이는 배례자들이 서방 정토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 부처를 향해 극락왕생을 기원할 수 있도록

동서로 배치한 것이랍니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양식을 이은 고려 시대 작품으로 불상의 위엄이 잘 표현되었고 제작 기법이 정교하며

진흙으로 만든 불상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어서 그 중요한 가치로 국보 제45호가 되었습니다. 

불공 중인 신도들이 많아서 사진을 찍지 못하고 관광화보로 대신합니다.  

 

 

부석사는 충남 서산의 부석사와 같은 전설을 담고 있는 절로

의상 대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선묘의 영정을 모신 선묘각도 있고

 

 

그 외벽에는 전설을 그림으로 담아 놓았습니다. 

 

 

 

무량수전 뒤에는 실제로 ‘浮石’이라는 바위가 있습니다.

아래위가 붙지 않고 빈 공간에 떠 있다 하여 뜬돌, '浮石'이라 이름 붙은 바위입니다. 

 

 

석가모니 부처 앞을 지나

 

 

바위에 붙어 있는 '소망의 동전'을 보며

 

 

보물 제249호인 삼층 석탑을 지나서 

 

 

또다른 국보인 조사당으로 올라가는 돌포장길,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영정을 안치한 곳으로 국보 제19호입니다. 

 

 

이 조사당 안에는 선묘와 

 

 

벽화로 남은 금강역사들이 의상을 보호하고 있었네요.

이곳의 벽화는 우리나라 사원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아 국보 제46호가 되었습니다.

 

 

조사당 처마 밑에는 의상이 사용했던 지팡이를 꽂아 놓았더니 살아났다는 천 년의 전설 나무,

'선비화(골담초)'가 있습니다. 

‘이 나루가 말라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으리라’하였다는 의상이 말씀이 전합니다.

 

 

무량수전 앞에 서서 '최순우의 눈'으로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산마루, 눈길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을 바라보았네요. 

 

 

 

구름이 잔뜩 끼면서 기대했던 부석사의 일몰은 무산.

안양루를 지나

 

 

천왕문의 생긴 대로 끼워놓은 문턱을 넘어 선비촌의 숙소로 돌아갑니다. 

 

 

죽계루의 야경과 

 

 

주세붕이 세웠던 서원의 첫 이름, 백운동 서원의 '백운동' 건물, 

 

 

안향의 영정이 있는 영정각을 다시 돌아보았지요. 

선비촌 숙박객을 위한 '소수서원의 야간 별빛 감상' 행사의 일환이었지만

구름 많은 밤하늘에서는 대보름달이 간간히 얼굴을 보일 뿐, 별빛은 그리 신통치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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