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암만에서 이스라엘 국경, 킹 후세인 다리까지 택시 25JD,
그곳에서 출국장까지 택시 3JD. 출국세 10JD.
이스라엘 국경까지 셔틀버스 7JD, 큰 짐 값 개당 1.5JD.
큰 가방은 암만 숙소에 맡기고 4박 5일의 일정에 작은 배낭 하나로 떠난 길입니다.
다리 건너 이스라엘 입국장.
체온을 재고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왔는지 묻는 등 이곳도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사람이 많아 줄을 섰어도 밀고 밀리는 혼잡 속에 시간도 많이 걸렸지요.
입국심사관은 방문 목적, 방문지를 묻고 곧 끝낼 듯하더니 여권에 붙어 있던 이란 비자를 발견하고는
다시 이란의 체류 기간과 방문 목적을 묻더군요.
이스라엘 출입국이 기록되어 있으면 다른 아랍국의 입국에 제한받는 것을 감안한 듯,
별지에 입국 스탬프를 찍어 주었지요.
생각했던 것보다는 까다롭지 않았지만 기관총을 멘 군인들이 오가는 분위기는 살벌했습니다.
예루살렘 행 버스를 타기 위하여 50달러 환전. 1달러에 3.6 쉐퀠. 1 쉐퀠은 약 300원입니다.
버스 요금은 42쉐퀠에 여기도 큰 짐 값은 별도.
예루살렘의 마다스커스 게이트 근처인 종점에 하차, 성 안 이슬람 구역으로 들어가
무슬림이 운영하는 'Golden Inn'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고풍스러운 돌집으로
거실 한쪽 벽은 거대한 황금사원 사진으로 장식을 해 놓았습니다.
숙소 후론트에서 3일 간의 현지 투어도 예약했습니다.
내일은 마사다와 에인게디, 제리코.
모레는 베들레헴 반일 투어, 그다음 날은 나사렛과 갈릴리 호수 주변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이곳 상황이 안 좋은 시기였기 때문에 자유 여행은 포기하고 그 대신 움직이기 쉬운 구시가에 들어와서
무슬림 여행사의 현지 투어로 진행합니다.
예루살렘 성안은 틈틈이 돌아볼 생각입니다.
멀리 황금돔이 보이네요.
해발 820m의 스코푸스(Scopus- Mount of Olives의 북쪽에 있는 주봉) 산 전망대에서는
성벽으로 둘러 싸인 예루살렘 구시가와
성벽 밖의 풍경,
성을 둘러싼 신도시까지 모두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구시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성 안은 유대인과 기독교인, 무슬람과 아르메니안의
네 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그들 모두에게 성스러운 땅입니다.
다윗 탑이 있는 자파 게이트는 BC 10세기 경 다윗 왕 시대에 건설되었다는,
거의 3000년 역사를 가진 건물이고
황금 돔 옆 유대교 최고의 성지, '통곡의 벽(Western Wall)'은 솔로몬 왕 때 건축된 성이
로마 시대에 파괴되면서 겨우 남은 서쪽 벽.
이곳은 왼쪽이 남자, 오른쪽은 여자용으로 구분된 기도의 장소입니다.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은
2000년 동안 터전을 잃고 떠돌던 유대인들이 이 앞에서 성전의 파괴와 자신의 처지를 비관,
통곡하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과
기도하는 사람들이 벽에 끼워 놓은, 소망의 종이에 맺힌 밤 이슬이
마치 나라를 잃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의 눈물처럼 보인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벽을 향해서 절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은 아주 엄숙했습니다.
곳곳에 중무장을 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유대의 성지인 이 '통곡의 벽'을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지요.
경건한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옆 골목으로 나가면
분쟁의 중심에 있는 황금 돔(Dome of the Rock)이 나옵니다.
모하멧이 승천했다는 '신성한 바위'를 모시는 무슬림의 성지이며 동시에
유대인들에게는 3000년 전, 솔로몬 왕의 성전이 있었다는 성지입니다.
황금으로 만든 노란 돔 지붕은 예루살렘의 회색빛 건물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이었습니다.
채색 타일 장식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모스크입니다.
여기에서는 멀리 또 다른 성지, 감람산(Mount of Olives의 남쪽 봉우리)이 보입니다.
두 종교의 대립을 보여주듯 까다로운 검색을 거쳐 들어간 뜰은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황금돔 입구는 무슬림 자치 경찰이 지키고 있습니다.
돔 주변을 순찰 중이던 이스라엘 여군의 앳된 얼굴과 중무장한 모습이 신기해서 같이 기념사진을 찍으려다가
그 앞을 지키던 무슬림의 거친 항의를 들으면서 모스크 입장을 거절당했습니다.
순간, 이곳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한 경솔한 행동이었다는 걸 깨달았지요.
'평화의 도시'를 뜻하는 예루살렘, 그러나 이 작은 성 안의 첨예한 대립을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밤에는 우리 숙소 근처에서도 총소리가 자주 들렸습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십자가 길, 고난의 길)로 갑니다.
이는 예수님의 마지막 시간을 기억하며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기독교인들의 순례 여행으로
제1처, '예수님이 재판을 받은 빌라도 법정'에서 시작하여
제14처,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성 분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에 이르는 400m의 길입니다.
아홉 군데는 성서를 바탕으로, 나머지는 유대의 전통에서 그 근거를 삼았답니다.
먼저 제1처, '예수님이 재판을 받은 빌라도 법정' 자리에는 현재 이슬람 학교가 있습니다.
제2처는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하던 곳'으로
역시 이슬람 지구의 아르메니안 교회 안에 있고
제3처 '예수님이 지쳐서 쓰러지신 곳'.
제4처 '예수님이 성모 마리아를 만난 곳'과
제5처는 골고다 언덕이 시작되는 곳으로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곳'.
제6처,
'베로니카가 물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린 곳'이며
제7처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지신 곳'.
제8처 '예수님이 성모 마리아를 위로해드린 곳'입니다.
제9처는 '예수님이 세 번째 쓰러지신 곳'이고
제10처부터 제14처까지는 골고다 언덕의 예수님의 무덤 위에 세워진 기독교 성지인
성 분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er) 안에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며 운명하신 곳, 부활의 기적이 일어난 곳이지요.
제10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옷 벗김을 당한 곳'으로
이 교회 안의 이디오피아 예배당 구역에 있다는데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봉직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인들과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거든요.
이 근처 어디일 듯하지만 확인은 못했네요.
제11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으로 가톨릭에서 관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제12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신 곳'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운명하신 예수님을 눕혔던 제13처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관을 만지며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지요.
예수님이 묻힌 제14처입니다.
하루 400만 명이 찾는 곳답게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 안으로 들어가 참배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그 앞에서는 예배를 드리는 성직자도 많습니다.
비신자에게도 이 엄숙하고 간절한 분위기는 아주 감동적이었지요.
우리나라 인천 지역에서 45년 동안 봉직하다가 안식년을 맞아 방문하셨다는
알퐁소 신부님을 만나 사진 한 장.
성당 안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한국인임을 아셨답니다.
내년 2월에 임지인 석남동 성당으로 돌아간다는 신부님은 우리 여행이 잘 끝나도록 축성도 해 주셨네요.
무슬림 상가가 밀집한 미로 같은 골목을 지나 분묘 교회로 가는 금요일의 순례가 보입니다.
이런 좁은 길에서는 우발적인 충돌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불안했던 장면입니다.
우리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유대인 지구가 나옵니다.
번잡한 상가의 무슬림 지역과는 반대로 이곳은 유대인들의 예배당인 시나고그에
오피스 건물, 굳게 닫힌 주택들로 조용하며 깨끗했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지요
유대교도 특유의 검은 복장 남자들이 지나가네요.
밤의 라이언 게이트 근처, 번화가는 평화스러웠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 중, 출생지가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행정구역이 아닌 사람은
허가증이 없을 경우 라말라(Ramallah, 팔레스타인의 수도) 등,
'분리장벽'으로 둘러싸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만 살아야 하고 그 밖으로 나갈 수 없답니다.
현지 투어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투어를 나가던 우리도 중간중간,
검문소에서 여권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차 안도 샅샅이 검색했네요.
그러니 기본권마저 제한받는 울분에 크고 작은 충돌이 자주 일어나면서
양쪽의 감정은 점점 악화되는 듯합니다.
분쟁의 땅이라는 두려운 현실은 우리가 머문 4박5일 사이에
한밤의 잦은 총소리와 거리 요소요소에 중무장한 군인들이 보이던 일,
황금 돔 앞, 무슬림의 신경질적인 질타에
팔레스타인 트럭 운전수가 차를 몰고 인도도 돌진, 길가던 유대인을 치어 죽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많은 무장군인이 시가에 포진한 일,
떠나던 날, 전날의 양쪽 충돌로 무슬림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키면서
갑자기 성안의 구시가 상가 전체가 철시되었던 일에
요르단에서 들어오는 국경의 입국장이 폐쇄되면서 출국장까지 한산했던 일 등으로 체험했지요.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우리 숙소의 주인 아저씨며 오가는 길에 마주치던 무슬림들은 친절했지만
그들의 '적'을 향한 증오는 무서웠습니다.
귀국 며칠 후에는 우리가 아침 산책길에 다녔던 유대 구역의 예배당, 시나고그에 무슬림이 침입,
기도하던 여신도를 도끼로 참혹하게 죽인 사건도 있습니다.
오랜 역사 속, 그들에게 쌓인 원한은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닌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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