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코탄에서 돌아와 삿포로 역 지하의 JR 인포에서 구입한 '삿포로-후라노 에리어 패스'를 이용,
3박 4일의 이 지역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 패스 요금은 1100엔, 엔화의 하락으로 국내보다 현지에서 구입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삿포로(礼幌), 또는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에서 타키카와(용천)나 아시히카와(旭川)로 가는 특급열차 1회 왕복권(탑승 전 지정석 무료 신청 가능)에
타키카와, 아사히카와, 비에이(美瑛), 후라노(富良野) 사이를 오가는 보통열차, 삿포로에서 오타루를 오가는 보통열차에 한하여 3박 4일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삿포로에서 출발하여 홋카이도 중앙에 있는 아시히카와(旭川)에 도착,
역 앞 버스터미널의 18번 정거장에서 666번 버스를 타고 45분 거리의 '우에노팜'에 갑니다.
평일에 갈 때는 09:30, 11:30, 12:30, 돌아올 때는 11:16, 13:26, 14:26으로
하루 3회 운행하는 이 버스의 요금은 편도 610엔.
18번 정거장은 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야 합니다.
홋카이도 정원의 발상지이며 홋카이도 정원의 대표 격인 이 '우에노팜'은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우에노 사유키'가 가족 소유의 쌀 농장을 영국식 정원으로 만든 후
홋카이도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꽃과 나무를 재배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1000엔.
입구에서는 요즘 개화 중인 꽃의 리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생화들은 작은 컵에도 담겨 있었네요.
이제 정원으로 들어갑니다.
이 정원의 특징은 '자연스러움',
나무와 꽃, 부자재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소박한 정원이었지요.
곳곳에 놓인 벤치는 이 정원의 소품이 되어 풍경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면서 관광객들이 앉아 쉴 수도 있고 붉은 벽돌담도 배경으로 사용되어 꽃과 나무를 돋보이게 합니다.
'인간의 손길은 최소한으로'
우리나라 태안에 '천리포 수목원'을 조성했던 민병갈의 정원 철학이 여기에도 있었네요.
나처럼 다음 버스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꽃과 나무를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여유 있게 걸어야 할 '사유의 정원' 같은 분위기였지요.
곳곳에 땅의 정령인 '놈'이 보입니다.
그들은 이 정원에 살면서 한밤중에 몰래 정원 일을 돕는 요정이라지요.
꽃밭 속에 살짝 숨어 있는 이 요정들을 찾는 일도 재미있습니다.
샤테키 산으로 올라가는 길,
여기도 역시 야생의 루피너스가 많았습니다.
오래된 헛간을 개조한 나야(NAYA) 카페 앞에는
예쁜 접시와 찻잔, 원예도구와 꽃씨며
꽃모종을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유월 초인 지금은 꽃을 많이 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여기 풍성한 꽃들을 저 정원에서도 많이 보았더라면 하는 서운함은 있었네요.
동부의 시레토코에서 북부 왓카나이로 이동할 때, 열차 연결 시간이 맞지 않아 아사히카와에서 하루 머문 일이 있었지요.
저녁 무렵, 숙소에서 나와 열차역 뒤에 있는 이 공원을 산책할 때
강변 산책로 안내에서 '빙점교'를 발견,
여기에 소설, '빙점'을 썼던 '미우라 아야코'의 기념문학관이 있는 것을 알았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우에노팜에서 돌아와
아사히키와 역(旭川驛) 인근의 '빙점교(氷點橋)'를 지나는 직선거리, '빙점로(氷點通)' 끝에 있는
'외국수종견본림' 안,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 1922~1999)'의 문학관에 왔습니다.
기념관 안에는 작가의 얼굴과 그의 소설 한 구절에
평생의 동지였던 남편의 얼굴도 보입니다.
작가의 연혁과 평단의 글,
작가가 쓴 책들이 전시되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그의 대표작인 '빙점'을 연상케 하는 눈송이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습니다.
2층은 작가의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독서실,
서가에는 우리말로 번역한 소설과 수필도 나란히 꽂혀 있었네요.
통유리로 울창한 숲이 내려다보이는,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기념관이었지요.
'빙점'과 '양치는 언덕'은 내 중학교 시절, 당시의 베스트셀러였는데 지금은 그 줄거리도 가물가물하네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원죄를 사랑으로 다루었다는 정도.
'빙점교'의 안내판을 본 후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그 시절의 아련한 감성을 다시 돌이켜보고 싶어서였겠지요.
밤을 새워 소설을 읽었던 한 단발머리 여자아이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는 시간이었네요.
귀국 후, 도서관에서 그 분의 책을 찾았지만 종교적인 내용의 수필집, '빛이 있는 동안에' 뿐.
이제 그 빙점을, 그 작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와 여러가지 감회가 뒤섞인 마음으로 공원 안을 걸어 다녔습니다.
'외국수종견본림'이라는 다양한 수종이 울창한 이 공원에는
찾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군데군데 나무 기둥에는
작가의 소설 내용 일부가 적혀 있었으니 사람은 가도 작품은 영원히 남아 있었네요.
기념관 한 쪽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빙점 맥주'를 곁들여 늦은 점심을 먹었지요.
맥주 맛은 삿포로 한정의 '삿포로 클래식'과 다를 바 없었지만
소설의 추억이 소중하기에 빈 병 하나와 '빙점 커피' 한 봉지를 기념으로 가져왔습니다.
보기만 해도 즐거운 그림으로 도배한, 달랑 1량짜리 열차를 타고 이제 3박의 후라노에 갑니다.
이 구간은 보통열차로 지정석이 따로 없습니다.
수시로 비가 오고 개는 홋카이도의 날씨에 익숙해졌지요.
설산과 그 아래 구름, 정갈한 농촌 마을과 막 모내기를 끝낸 연둣빛 들판...................
여행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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