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7일 출국, 26일까지 9박 10일 동안 벳푸 일대와 시코쿠 (四國)를 돌았던 여행입니다.
떠날 때는 남편과 규슈(九州)의 오이타로, 귀국은 다카마쓰에서 합류했던 언니네와 같이 했지요.
애초 벳푸(別府)에서 규슈 올레 두어 개 걸으려던 계획은 현지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지만
쿠마모토의 아소산(阿蘇山)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우리 남해안의 다도해 같았던 '세토 내해'의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시코쿠의 나오시마에서는 시간이 모자랐고 쇼도시마의 현지 투어는 가성비, 별로였네요.
여행은 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아쉬움으로 끝납니다.
하루 한 편인 제주항공으로 인천공항에서 10시 50분 출국, 12시 45분 오이타 (大分) 공항 도착.
공항 입국장 안에서 벳푸기타하마(北 別府)행으로 1300엔의 리무진 버스표 구입 후 밖으로 나가
2번 플랫폼에서 벳푸행 버스 승차, 50분 정도 달려 벳푸기타하마 버스센터에서 하차하여
7분 거리의 벳푸역 쪽으로 걸어서 예약했던 그 앞의 이동하기 좋은 숙소,
'Super Hotel Beppu Ekimae'에 들어왔습니다.
버스 안에는 한국어 안내방송이, 차 안의 전광판에는 정류장 정보가 한글로 나옵니다.
아래 사진에서 왼쪽의 시간표는 벳푸기타하마를 거쳐 오이타로 가는 K 버스,
벳푸역 종점인 B 버스는 하루 다섯 편으로 오른쪽에 있으니
입국 절차 후 서두르면 13시 15분, 늦어도 14시 15분에 출발하는 K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www.oita-airport.jp
열차역 앞의 인포에는 몇 가지 한글 자료와 우리말 소통이 되는 직원이 있습니다.
다음날은 규슈 올레의 하나인 11km, 3~4시간 거리의 쓰루미다케(鶴見岳, 1375m) 기슭을 걷는 '벳푸코스',
아소구주(阿蘇九重) 국립공원 안에 있는 시다카 호수(해발 600m)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차도(1.3km)
→ 360도 파노라마 전망대(2.6km) → 아이다나 지장보살(3.8km) → 작은 폭포(4.7km) → 아다고(愛宕, 애탕) 공민관(6.6km) → 가구라메(神樂女) 호수 입구(8.5km) → 가구라메 호수(10.3km)에서 원점 회귀인 길을 걷을 예정이었지만
열차역의 인포에서는 얼마 전의 태풍으로 일부 훼손된 길이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했네요.
그러면서 로프웨이 왕복을 이용, 쓰루미다케(鶴見岳, 1375m)에 올라갔다가 내려와
시다카 호수를 돌아 나오는 코스를 권하기에 계획을 수정,
벳푸 1일 자유승차권(마이벳푸프리 미니프리 승차권, 1000엔)을 산 다음
JR벳푸역 서쪽 출구의
36번 플랫폼에서 유후인행 가메노이(龜井) 버스를 타고 차로 30분 거리의 고원역 로프웨이 탑승장에서 내렸습니다.
안내문에 직선으로 올라가는 로프웨이와 그 왼쪽으로 4km 거리의 하산길 안내가 보입니다.
편도(성인 왕복 1800엔, 시니어 할인과 원데이티켓 소지자의 200엔 할인 편도 요금은 1100엔) 티켓을 사들고
로프웨이 탑승, 10여 분 만에 종점인 산상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정상(1375m).
거기에서는 저 아래 벳푸만과 그 만을 둘러싼 벳푸 시내,
오이타현의 현청도시인 오이타로 가는 고속도로와
우리의 다음 행선지인 시다카(志高) 산정호수,
산으로 둘러싸인 저 멀리 온천휴양지인 유후인이 보입니다.
활화산인 쓰루미다케(鶴見岳)가 만들어낸 온천, 벳푸와 유후인이 이 산의 앞뒤에 자리 잡고 있었지요.
산상역에서 정상 아래 사이에
일본인들의 숭배대상인 칠복신(시치후쿠진, 七福神)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네요.
그들은 새해 정초에 '칠복신을 태운 보물 가득한 배' 그림을 베개 밑에 두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는답니다.
산상역을 내려다보며 억새 가득한 하산길로 갑니다.
삼나무 숲길이 예쁘다기에 들어선 길,
초반에는 험한 돌길에 미끄러지고 돌부리에 차이면서 한동안 힘들었지만
숲길에 들어서면서 걷기 좋은 산책로가 나옵니다.
오타케곤겐신사(御獄權現社)와 그 아래의 어령수를 지나
신사 입구인 도리이(鳥居) 정거장까지 내려왔습니다.
거의 3시간 정도의 하산길이었지요.
그러면서 내가 올랐던 쑤루미산이나 그 옆의 가련산 모두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활화산이라는 안내판을 보며 놀랐네요.
벳푸에서 유후인 행의 36번 버스는 매시 한 두 번으로 많지만
중간의 여기 도리이에서 시다카 호반을 돌아 나오는 버스는
아침 8시 5분의 한 편 뿐이라서
호수까지 길을 건너 20분 정도, 1.5km를 걸어야 했습니다.
거기서 만난 시다카 호수(志高湖)는
그리 크지는 않아도
2km 둘레에 벚나무가 무성한
고요한 숲 속의 산정호수였습니다.
봄의 벚꽃 필 무렵은 더 예쁠 듯했네요.
여기에도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지요.
멀리 오른쪽 위로 우리가 다녀온 쓰루미다케와 산정역을 오가는 로프웨이가 보입니다.
호수를 한 바퀴 걸은 다음 다시 도리이까지 걸어 나와 36번 버스를 타고 뱃푸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서쪽 출구에서 가메노이 2번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오니이시보즈 지고쿠(鬼石坊主地獄, 귀석방주 지옥), 지노이케 지고쿠(血池地獄, 혈지 지옥),
다쓰마키 지고쿠(龍卷地獄, 용권 지옥) 등 1200년 전에 쓰루미다케가 폭발하면서 생긴 열천,
8개 지옥 온천(地獄溫泉, 지고쿠온센) 지역에 왔습니다.
지하 250~300m 깊이에서 100도 전후의 열탕과 수증기가 분출되는 모습이
무시무시한 지옥을 연상케 하여 붙은 이름이랍니다.
JR벳푸역 앞에는 하루 3회, 모든 지옥온천을 순례하는 관광버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미지고쿠(海地獄, 해지옥)입니다.
개별 입장료 450엔.
입구로 들어서자 큰 기둥 같은 수증기 사이로
파란빛의 온천이 나왔습니다.
분출 시에는 무색투명한 열탕이지만 깊이 120m에서 나오는 98도의 뜨거운 물은
곧 온도와 압력의 영향을 받아 청백색으로 변색, 파란 바다처럼 보인답니다.
시야를 가릴 정도의 거대한 수증기가 끝없이 솟아 나오는 놀라운 풍경이었지요.
20kg 정도의 어린아이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가시연꽃 등 여러 종류의 연꽃이 자라는,
온천의 열을 이용한 온실을 거쳐
이 해지옥 안,
산화철과 산화마그네슘을 함유한 붉은색 진흙이 쌓이면서 피로 물든 연못처럼 보이는 아카이케 지옥을 지나
족탕에서 오늘 고생한 발을 담그며 잘 쉬었지만
5시가 넘으면서 시내로 들아가는 버스들은 이미 하루 운행이 끝났거나 운행 간격이 단축되었고
그걸 몰랐던 우리는 정거장에서 한동안 기다려야 했지요.
묻고 물어 칸나와(鐵輪) 버스센터까지 걸어 나와서야 벳푸역으로 가는 5번 버스를 탈 수 있었네요.
밤늦게까지 거리를 오가는 우리나라의 버스를 생각하며 돌아가는 시간에 무심했거든요.
다음날은 규슈 올레 중 '고코노에, 야마나미코스'를 걸으려 열차를 타고 우선 고코노에의 '꿈의 대현수교'를 찾았습니다.
다리에서 시작, 우케노구치 온천(1.0km) → 밀크랜드(3.9km) → 오토나시 강(4.0km) → 고코노에 자연관(6.2km) → 야마나미 목장(8.5km) → 시라미즈가와 폭포(10.6km) → 조자바루, 다데와라 습원(12.2km)까지
총 12,2km 거리, 4~5시간 걷는 코스입니다.
여기 역시 아소구주 국립공원 안, 해발 800~900m의 한다고원(飯田高原, 반전고원)을 가로지르는
규슈올레의 대표적인 코스로 오쿠분고 코스와 다카치호 코스가 외곽에 있고
아소산(阿蘇山)과 구주연산(九重連山) 중간에는
일본 10대 온천의 하나로 꼽히는 구로카와 온천이, 구주연산 북쪽에는 유후인이 있습니다.
우케노구치 온천을 찾았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정말 아름다운 꿈의 나라가 떠 있는 고원’이라고 묘사했을 정도로 한다 고원의 광활한 풍경은 압도적이라 했다네요.
그래서 기대가 아주 컸습니다.
열차를 타고 노란 가을의 들판을 바라보며
몇 년 전 다녀갔던 온천지, 유노히라(蕩平溫泉, 탕평온천)와 유후인(湯布院, 탕포원)을 지나
분고나카무라 역(豊後中村驛, 풍후중촌역. 편도 15,00엔)에 도착,
'꿈의 다리'로 갑니다.
오이타에서는 유후인을 거쳐 분고나카무라로 가는 열차는 자주 있습니다.
택시로 오가야 했던 길은 이제 열차역 앞에서 한 시간에 한두 번,
셔틀버스(편도 500엔)가 오가면서 이동이 편해졌습니다.
‘고코노예 꿈의 대현수교(九重夢大弔橋, 고코노에 유메오쓰리하시)'는
총공사비 19억 엔을 들여 2006년에 완공한, 173m 높이의 계곡에 세운 390m 길이의 다리로
일본에서 가장 높고 긴 인도교랍니다.
다리 이름 중의 '弔'자를 '매달다'는 뜻으로 사용한,
'양 쪽 언덕에 줄이나 쇠사슬 등으로 가로질러 매단 큰 다리(현수교)'라는 의미였지요.
입장료는 500엔.
이 '굉장한' 현수교를 보려는 노인들과
학생들이 단체로 몰려들면서 매표소부터 줄이 길었네요.
남폭포와 여폭포 등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며 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여기서도 '꿈의 다리'와
구주연산(九重連山)이 보입니다.
홍보판의 가을 단풍 속 사진이 좋아서 한 장 찍으며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듯한 올레길이 아무런 표지도, 안내도 없어서 한동안 헤매다가
셔틀버스 정거장에 붙어 있던 엉성한 지도가 생각나기에 혹시 하고 다리를 되건너
가을 풍경을 보면서 길을 찾는 중입니다.
드디어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즐겨 찾았다는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우케노구치 온천' 가는 길.
거기서도 이리저리 길을 찾으면서
한낮의 산촌, 드물게 만난 현지인들에게 파파고를 이용, 물어 보았지만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었지요.
그러니 저 작은 다리를 건너
겨우 발견한 길가의 지역안내지도를 보면서도 오늘 일정을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기대를 가지고 찾아온 길이지만 올레 표지판, 안내 리본 하나 보이지 않아
다리 양쪽 끝 지역에서 그 흔적을 찾아다니는 사이에
이 코스의 끝인 조자바루, 다데와라 습원까지 걸어갈 시간이 빠듯해졌기 때문이었지요.
제주 올레에 로열티를 내면서까지 유치했던 규슈 올레가 이렇게 불친절할 수 있나 어이상실!
벳푸역 인포에 올레길 지도가 전혀 없는 것도 이상했는데
벳푸코스도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로 변경하게 만들더니 이 코스에도 전혀 안내가 없으니
오늘 좋았던 시작은 이렇듯 실망스럽게 끝났습니다.
무언가 한일 관계자 양쪽에 갈등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주변의 예쁜 단풍길과
삼나무 숲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벳푸역으로 돌아와 동쪽 광장의 수탕에 손을 담그며 하루를 마감하는 중입니다.
벳푸는 곳곳에 온천이 솟아나면서 그 수증기가 하얗게 올라오는 동네였지요.
3박의 벳푸, 호텔의 조식 뷔페는 좋았습니다.
거기에 오후 6시부터 식당에서 와인과 일본 소주, 위스키들을 무료로 제공하는 '알코올 타임'은
하루의 피로를 푸는 기분 좋은 시간이었네요.
'35. 일본, 규슈와 시코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쇼도시마(小豆島, 소두도) (0) | 2023.11.07 |
---|---|
나오시마(直島, 직도) (0) | 2023.11.06 |
시코쿠(四國), 다카마쓰(高松) (0) | 2023.11.04 |
구마모토(熊本, 웅본), 아소산(阿蘇山) (0) | 2023.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