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에서 강진의 '백운동 원림'으로 가는 길에 다시 만난 월출산은
아름다운 자연과 풍부한 문화자원을 간직한 한반도 최남단의 산악 국립공원입니다.
산에 달이 걸려 있을 때의 경관이 아주 감동적이어서 산 이름도 월출산이랍니다.
거대한 암봉과 암릉은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멋진 기암괴석을 만들었습니다.
백운동 원림으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유채꽃이 한창입니다.
다원 주차장에서 원림까지는 80m.
백운동 정원은 조선 중기의 처사 이담로(1627~1701)가 조성한 별서로
신명규, 남구만, 임영, 김창흡, 정약용, 초의 선사 등 조선시대의 문사들이 즐겨 찾아와 많은 시문을 남긴 곳.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세연정 등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전통원림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중기 선비들의 은거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산은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하면서 자리를 같이한 일행들과 어울려 시, '백운동 12경'을 지었고
제자인 초의의 그림, '백운동도'에 담아 '백운첩'을 남겼습니다.
백운첩은 퇴락한 이 원림을 복원할 때 중요한 자료가 되었답니다.
이 원림, '백운유거' 안에는
담을 기준으로 외원과 내원으로 구별,
문사들이 풍류를 즐겼던 외원의 정선대와
그 언덕길의 붉은 소나무는
'제7경 정유강'과 '제11경 정선대'로 남았습니다.
정선대 앞에는 이담로의 6대손이자 다산의 제자였던 이시헌의 묘가 있습니다.
다산의 제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백운동 별서정원의 동주, 이시헌(1803~1860)에 이어
그의 집안 후손인 이한영(1868~1956)은
다산의 사후에도 그 후손들에게 매년 차를 보내면서 사제의 연을 이어갔다네요.
그 언덕에서 바라보는 '제1경 옥판봉'과
별서 뒤편의 늠름하게 솟은 왕대나무 숲을 노래한 '제12경 운당원'을 보면서
대숲으로 들어가면
그 길 끝에 저수지, '안운제'가 있고
옆으로 나가면
동백나무 숲과 안운마을로 나가는 원림 입구가 나옵니다.
원림 입구에는 동백나무(별칭 산다, 山茶) 숲을 즐기는 '제2경 산다경'이 있습니다.
언덕을 끼고 심은 동백나무가
이제는 길 가득 그늘 만드네
가지마다 꽃송이 맺혀 있으니
세한의 마음을 남겨둔 걸세.
내원의 초당, 수소실 옆에는 계곡의 물을 끌어온 작은 시내가 흐르고
사랑채인 자이당과 본채인 취미선방은
나무와 꽃들로 둘러싸여 화사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 뜰에도 '제8경 모란체'가 보이는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한 정원, '백운산장'입니다.
진분홍의 박태기꽃과 황매가 아름다운 안운 마을로 돌아 나와
차밭 사잇길을 걸어 유채꽃과 해당화 나무로 둘러싸인
찻집, '백운옥판차이야기'에 왔습니다.
안에서는
일제가 강진, 보성의 차를 대량으로 수탈, 일본 차로 포장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백운동 원림의 이한영은 백운옥판차, 월산차라는 토종 상표를 만들어
우리의 전통차를 지켰다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와 매화로 한반도를 나타낸, 자랑스러운 상표입니다.
대숲에서 야생찻잎을 채취하는 사진에
예쁜 찻잔과 주전자가 가득한 장식장,
그 옛날의 모습을 보여주는 글과 사진도 많습니다.
작년에 제다한 백운옥판차는 이미 소진되었다기에
말린 금잔화 한 송이 곁들인 월산차와 아이스크림을 주문, 잔잔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차밭을 산책하면서 전망대에는 본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합니다.
'강진 월출산에는 오래된 차 이야기가 있습니다.
달이 머물다 가는 월출산 자락에는 천년 넘게 자생하는 야생 차나무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차문화는 고려시대에
이곳 월출산 야생 차나무 숲을 중심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고려의 차문화는 쇠퇴했지만
이곳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 선생에 의해
그 가치와 제다법이 재발견되면서 부흥기를 맞이합니다.
해배 이후 다산은 제자들과 다신계를 맺었는데
이는 다산의 제다법으로 해마다 차를 만들어 보내기로 한
스승과 제자 간의 차로 맺은 아름다운 약속이었습니다.
다신계는 가장 어린 제자였던 이시헌 선생의 집안에서
백 년을 넘게 지켜졌고 자연스럽게 다산의 제다법이 계승되어
후손 이한영 선생의 백운옥판차로 이어졌습니다.
이한영 차 문화원에서는 지금도
옛 제다법 그대로 백운옥판차를 만들어
우리 차문화 천년의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밤낮의 온도 차가 크고 안개가 많아서 차 재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강진에는
백운옥판차 외에 현재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10만 평 규모의 차밭이 있습니다.
우리 차를 마셔야 하는 이유도 소개하고 있었네요.
드넓은 차밭 사잇길,
신선한 찻잎 냄새를 맡으며
초록의 세상을 누렸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길은 강진의 유배길 4코스로 '그리움 짙은 녹색 향기길'이며
강진의 문화, 생태 탐방길인 '월출산 달빛길'입니다.
차밭 산책이 길어지면서 근처의 무위사로 가는 시간이 늦어졌지요.
서둘러 사천왕문과 2층의 누각, 보제루를 지나
무위사의 보물인 성보박물관 안의
벽화를 보러 왔지만
박물관은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극락보전을 해체, 보수하면서 발견한 '내벽사면벽화'를 전시하고 있다기에
극락보전의 '아미타여래 삼존벽화'와 '백의 관음도'까지 같이 보려 했는데
어두워지면서 그도 허사가 되었네요.
1430년에 건립된 단정하고 소박한 느낌의 극락보전 뒤에서는
오래전 소실되었다는 대적광전을 복원하는 대규모 불사가 진행 중입니다.
저녁 6시를 알리는 타종 소리를 들으며 그냥 돌아섰습니다.
멀리 월출산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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