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조 섬에서 돌아온 몰타 본섬,
섬의 동쪽에 있는 수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발레타는
2018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었던 것처럼 언덕 위에는 선사시대 사원이 흩어져 있고 해안에는 17세기 요새가 위풍당당하며 오랜 역사의 건물에 음악, 영화, 미술, 비엔날레가 여행자를 맞이하는 곳입니다.
1566년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침공에 대비하여 당시 '성 요한 기사단' 단장이었던 'Valletta'가 축조한 이 도시.
성채와 대성당이 중심이 된 르네상스 양식의 역사 지구, 트리톤 분수를 지나 리퍼블릭 거리로 들어가면 몰타의 역사가 보입니다.
카르타고 해상 문명의 영향,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유물, 아랍 문명에 중세 노르만 공국 시대와 합스부르크 가의 통치를 거쳐 오늘날까지 7,000년의 중첩된 문화층이 쌓여 있는 곳이지요.
따뜻한 햇살이 연 300일 이상 펼쳐지는 이곳에서 '슬로 라이프'의 몰타 거리를 걸으면 오감이 즐겁다 했네요.
숙소인 'Gzira' 지역의 3박 아파트에서 나와 '그랜드 하버'를 바라보며 산책하다가
'Sliema'에서 저 앞의

도심, 'Valletta'로 오가는 페리를 타려 했더니 오늘은 파고가 높아서 운항이 중단되었다 했지요.
슬리에마↔발레타를 오가는 스피드 보트는 자주 있고 시내버스는 15번, 21번으로 20분 걸립니다.
그러나 버스의 경우, 만석일 경우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고 러시아워 시간에는 정류장 자체도 혼잡해서 버스 타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2유로인 버스 티켓은 2시간 안에는 무제한 탑승 가능.
'홉 온 홉 오프 투어버스'(1일 20유로)는 평일 9시~15시, 일요일은 9시~14시, 30분 간격 운행합니다.
택시로 이동, '트리톤 분수'를 지나면

리퍼블릭 거리의 성 조지 광장 중심에는 기사단 통치의 상징이었던 '그랜드 마스터 궁전(입장료 10€)'이 있습니다.
건물에 내걸린 국기는
1942년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국왕 조지 6세가 이탈리아와 독일에 공격에도 몰타 섬을 꿋꿋하게 지켰던 용맹스러운 식민지, 몰타인들에게 수여한 훈장이 들어 있습니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성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코린트 기둥이 몇 개 서 있는 오페라하우스 건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었지만 지금은 과거의 기둥과 흔적을 그대로 살린 야외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한쪽에는 몰타의 수도, 발레타를 건설한 '장 드 라 발레트'의 동상이 보입니다.
그는 몰타 기사단의 제49대 그랜드 마스터로 1565년 오스만 제국의 침공에 맞섰던 몰타 공방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인물.
새 도시를 지으면서 섬 중앙의 임디나에서 천도, 그의 이름을 따서 발레타가 됩니다.
성 요한 기사단의 도시였지요.
시내에는 몰타 기사단과 관련된 건물을 비롯한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많습니다.
여행 성수기는 7~10월.
성 요한 기사단은 1080년 예루살렘의 성 요한 성당 근처에 설립한, 순례길에 나선 병상자 간호 목적의 단체였으나
이후 종교 기사단으로 개조되면서 십자군 전쟁에 합류하게 되고
그 원정이 패전으로 끝나면서 이스라엘에서 축출, 이후 로도스에서도 이슬람 세력에 밀려 몰타로 옮기게 됩니다.
그러나 프랑스에 이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몰타에서 추방되었고
이후 각국을 전전하다가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근처에는 발레타 최고의 '성 요한 대성당'이 있습니다.
1041년 예루살렘에서 창건한 호스피탈 기사단의 후원자였던 '성 요한 성인'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장중한 외관은

황금빛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조각, 성 요한 기사단원들의 대리석 무덤으로 가득한 내부와 아주 대조적이었지요.
이 '성 요한 공동대성당은(St. John's Co-Cathedral)'에 대한 안내와 관람 안내가 보입니다.
월 ~ 토,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45분까지.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무.
티켓을 예매한 사람은 현지 구매하는 사람들과 달리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니어 할인 티켓은 12유로.
marketing@stjohnscocathedral.com

본당의 중앙제단을 위시하여 각국의 언어, 각 민족어로 예배를 볼 수 있는 9개의 예배당과 기도실, 성구실에
바닥의 기사단 무덤까지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공간입니다.

중앙제단의 앞과

뒤를 시작으로

그 놀랄 정도의 규모와 화려함은 비교할 데가 없었네요.
바티칸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종교와 성당의 권위에 저절로 압도당하는 한편 그 위압적인 분위기에 다소 거부감이 생겼던 시간!

그러니 내 관심은 여기, 기도실.
'The Oratory'에 있는 가로 5m의 그림, '카라바조(Caravaggio)'의 '세례 요한의 참수'였지요.

그를 만나려 18, 19, 20번 방으로 왔습니다.

카라비조의 '세례 요한의 참수'는
정밀한 붓터치, 빠른 손놀림, 생생한 입체감, 빛과 어둠의 대조가 주는 긴장감의 표현, 배경의 대담한 생략 등,
등장인물은 평면적인 벽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감이 있는 감옥 마당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였고
인간의 눈이 가장 시각적인 안정감, 균형미와 몰입감을 느끼는 황금비율(약 1:1.618)로 짜인 구도에
황금나선으로 사용, 이 극적이고 잔인한 사건의 가장 핵심 순간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림 하단에는 살해당한 요한의 피를 찍어 쓴 것처럼 보이는, 그의 유일한 서명, 'f michelangelo'이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같은 이름이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하여
카라바조는 그가 자란 동네 이름을 사용하면서 그렇게 알려집니다.
당시 로마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쫓기던 그는 이 그림을 그려준 대가로 성 요한 기사단의 기사 작위를 받으면서 자신을 구원해 준 기사단에 대한 감사와 면죄 염원을 표현, 이름 앞에 기사단을 뜻하는 알파벳 f를 병기했답니다.
그러나 기사단 단원과의 시비 끝에 큰 부상을 입힌 그는 현상 붙은 몸이 되어 다시 본토로 도망하던 중 사인을 알 수 없이 38세로 죽었다고 했지요.
그의 걷잡을 수 없는 광기는 분노 조절장애가 아닌 물감에 들어 있는 납 중독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혁신적인 화풍으로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루벤스, 모네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이 컸던, 미술계의 이단자였습니다.

카라바조의 작품, '성 제로니모'는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 중인 제로니모를 카라바조 답게 극적인 명암의 대조, 해골을 등장시킨 죽음의 허무 등을 표현한 몰타 시절 작품으로 당시 그의 그림의 주제였답니다.

박물관에서 나와 공화국 광장의 1837년에 문을 연 카페, ‘코르디나(Cordina)’에서

몰타 커피 마시면서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받았던 긴장을 풀고 있습니다.
1837년 개업한 이 '카페 코르디나(Cordina)'의 내부는 고풍스러웠습니다.
내가 마신 커피잔을 기념으로 사 들고

옆에 앉았던 현지인이 알려준 빵집, 'Maypole'에서 몰타 전통빵, '프리타'를 사 들고 앞의 공원에 앉았습니다.

골목골목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들어앉은 아주 복잡한 거리입니다.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어퍼 바라카 정원(Upper Barrakka Gardens)'에서는
몰타를 상징하는 '몰타 십자가'와


아름다운 정원이며


거대한 항구인 그랜드 하버, 그 건너 세 도시의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1번 리카솔리 항구, 4번은 승리의 요새, 5번은 세인트 안젤로 항, 8번 쿠브르 항에 9번은 센글레아 워터프런트, 13번은 보일러스 워프 등 섬 남동쪽의 거대한 그랜드 하버(Grand Harbor)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에서는 매일 낮 12시와 오후 4시에 대포를 쏘는 전통의식(Salutibg Battery)이 진행됩니다.

오른쪽에는 몰타대학교가 있습니다.

임디나는 발레타에서 51~53번 버스로 31분 거리에 있는, 3000년 이상이 역사를 가진 내륙 암벽 위의 고대 요새도시.
기사단이 발레타의 그랜드하버 주변에 정착할 때까지는 몰타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도시의 좁은 골목과 높은 성벽은 넓은 광장, 웅장한 성당과 궁전으로 연결됩니다.

돌다리를 건너 정문인 '임디나 게이트'를 지나노라면 가운데 기사단 문장 양 옆으로 사자상이 앉아 있고

문 뒤 상단에는 몰타의 세 수호성인, '성 바울', '성 푸블리오', '성 아가타'의 부조가 보입니다.
'왕좌의 게임 시즌 1'에서 수도인 '킹스 랜딩'의 성문으로 등장,
이 일대가 케틀린 스타크가 말을 타고 킹스 랜딩으로 비밀리에 들어가는 장면에 사용되었다네요.

몰타 최초의 성당, 5세기에 지은 화려한 '성 바울 대성당'입니다.
여기는 사도 바울이 처음 복음을 전파한 유럽의 성지 순례지로 당시 총독, '푸블리우스'가 동부 몰타 해안에 난파되었던 성 바울을 받아들이면서 기독교로 개종합니다.
시칠리아 대지진 때 크게 파손된 것을 웅장한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하였답니다.
양쪽 탑에 있는 두 개의 시계는 서로 다른 시간을 알리고 있었지요.
이는 악마가 예배 시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교란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설정? 하였다네요.

그 앞에는 대성당 입장권으로 같이 볼 수 있는 '대성당 박물관'이 있습니다.

성벽에 오르면 넓은 임디나 평야가 보입니다.

그 옆에는 전망 좋은 찻집, ‘폰타넬라 티 가든’이 있었지만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서 들어갈 수 조차 없었지요.

성문 안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 조용하고 좁은 골목길들이 이어집니다.
'관광지인 현지 주민들의 생활을 보호하자'는 의미로 임디나를 '조용한 도시, 침묵의 도시'라 부른답니다.

성안을 한 바퀴 돌고 '그리스인의 문, 그릭 게이트'로 나오니

그 앞 '하워드 정원'에는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요셉의 조각이 보입니다.
거기에서 외곽, 라바트(Rabat, ‘교외’의 뜻)로 나가면

성 바울이 순교한 동굴 위에는 1575년 처음 짓고 1692년에 재건한 '성 바울 성당'이 있습니다.
그 안의 동상 아래에 새겨진 원형 동판에는
'성 바울의 순교(The Martyrdom of Saint Paul)' 장면이 있었습니다.
왼쪽에 칼을 든 집행관이 서 있고 중앙에는 참수를 당하기 직전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이 보이는 극적인 순간입니다.
주변에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슬퍼하거나 놀라는 천사들과 군중.
이 동판 하나로 분위기가 숙연해졌네요.

성 바울과 성 아가타의 토굴 무덤이 있는 곳, 'Wignacourt Museum'은
서기 60년경 사도 바울이 몰타 해안에서 난파된 후 이곳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며 기독교를 전파했던 곳으로 동굴 내부의 제단에도 성 바울의 동상이 있고 주변은 흰색 대리석 조각과 붉은 커튼으로 장식해 놓았습니다.
제단 주변에는 몰타기사단의 십자가 문장이 보입니다.
입장료 5유로.

고대 지하 신전이나 무덤, 몰타 섬 전역에는 선사 시대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지하 무덤 유적이 있답니다.
'성 바울의 동굴', '아가타의 동굴'도 그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기 전까지 지하 유적들이 약탈을 당하거나 일부 돌은 반출되었고 우물이나 가축우리, 쓰레기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피소로 쓰였다네요.

말타의 전통과자를 파는 가게, 'Parruccan'에 들러 다디단 후식, '임가렛(Imqaret)' 하나 사들고

석양이 아름답다는 딩글리 절벽으로 갑니다.
임디나에서 21번 버스로 30분, 8km 거리입니다.

날카로운 절벽 아래에도

계단식 밭을 일구며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요.

내친김에 발레타에서 15번 버스(20분)를 타고 남쪽의 '마샤 슬록'에도 갔지만 비바람이 불고 이미 늦은 오후 시간이라서
바닷가 가게들도 철수하는 시간,
우리도 선두 양쪽에 두 개의 눈이 그려있는 전통 어선을 타고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보트 투어를 끝내고 돌아섰습니다.

'마샤 슬록'의 관광지들은 모두 구름과 안개로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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