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튀니지, 몰타, 시칠리아

팔라초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 '시네마 천국'

좋은 아침 2026. 5. 23. 08:04

영화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 '팔라초 아드리아노'에 가는 길.

팔레르모 중앙역(Palermo Centrale) 근처의 버스 터미널에서 12시 15분에 출발하는 AST 버스에 탔습니다. 

이 버스는 '레르카라' → '필라가' → '프리찌'를 거쳐 15시에 팔라초 아드리아노 도착,  2시간 50분 걸렸지요.

96km 거리, 8.20유로.

AST 홈페이지(Azienda Siciliana Trasporti)에서 시간 확인 가능.

출발지(Partenza), 'Palermo'. 목적지(Arrivo), 'Palazzo Adriano'로 설정, 조회하면 운행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매 불가, 당일 현장에서 구입해야 합니다. 

 

시칠리아의 곡창지대를 달리던 버스는 

 

 

요새처럼 언덕 위에 서 있는 마을, '프리찌(Prizzi)'를 지나면서부터  

 

 

좁은 시골길로 들어섰습니다.

 

 

여기는 시칠리아 중서부, 해발 696m에 인구가 2000여 명인 작은 산악마을.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발칸 침공을 피해서 이주한 알바니아인들이 정착한 마을로

중심인 움베르토 광장에는 1608년에 만든 식수대와 팔각형의 분수대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 마을은 1988년 개봉했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 Nuovo Cinema Paradiso)’의 촬영지라서

오래전, 여러 번 보았던 그 영화에 대한 향수 같은 감정으로 찾아온 것이지요.

 

 

영화 속의 배경은 1940~1950년대, 이 마을처럼 작은 가상마을인 '지안칼도'.

영화 촬영을 위하여 광장에 극장의 외관을 임시로 만들어 외부 장면을 촬영하였고

극장 내부 장면은 마을의 '카르멜로 성모 성당(Chiesa di Maria  Santissima  del Carmelo)'에서 촬영하였답니다.

아래 사진에서 광장 왼쪽에 임시로 가설하였던 극장, 

 

 

 

이 세트장은 촬영이 끝난 후에 곧 철거하였다지요.

 

 

영화가 유명세를 타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마을에서는 아예 광장 한쪽에 건물 한 채를 앞면만 개조하여 영화 세트처럼 만들어놓고 내부 1, 2층에 박물관(Museo Cinema Paradiso)을  조성해 놓았습니다. 

입장료 무료, 개방 시간은 09:00~13:00, 15:00~18:00. 

 

박물관 오른쪽의 '마리아 성모승천교회'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판테온'으로 최초의 알바니아 비문 묘비가 남아 있는 특별한 장소,

영화 속에서 '알프레도의 장례식'을 치렀던 '마리아 델 루메 교회'는 왼쪽에 있습니다.

 

 

예약한 숙소를 찾아 Francesco 거리를 오르내리며 급기야 주민의 도움으로 차량까지 동원해서 찾아온 집이지만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풍경만은 일품이었네요. 

 

 

 

짐을 놓고 곧장 달려온 '시네마 천국 박물관'.

 

 

 'Museo Cinema Paradiso'에는 

 

 

'이 박물관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라는 환영인사를 시작으로

 

 

1,2 층에 걸쳐  영화 장면과 

 

 

 

필름 영사기, 영화 필름을 감는 금속 릴이며 알프레도의 자전거를 소품으로 등장시키면서  

 

 

 

영화의 촬영지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큰 감회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유명 영화감독이 된 토토, 알프레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30년 만에 고향을 찾아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던 영화,

1988년에 개봉한 이 '시네마 천국(Nuovo Cinema Paradiso)'은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배경음악과 어울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명화였지요.  

 

알프레도와 토토,

 

 

어린 토토에게 마을 극장의 영사실은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영사실에 자주 찾아와 알프레도를 귀찮게 했던 토토는 화재 사고 현장에서 그를 구해냈고 그때 시력을 잃은 알프레도 대신 영사 기사로 일하면서 서로 가까워집니다.

 

 

젊은 날의 엘레나와 토토.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알프레도.

변함없이 토토의 곁을 지키던 알프레도는 첫사랑에 좌절한 청년 토토에게 넓은 세계로 나가라 권합니다.

 

-'인생은 네가 본 영화와는 달라. 인생이 훨씬 더 힘들지.'

-'여기 살면 안 돼. 이곳은 저주받은 땅이야. 여기 있으면 네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

-'떠나라. 이곳을 잊어버려. 향수에 빠지지 말아라. 돌아와서는 안 되고 우리를 생각해서도 안 된다'.

-'무슨 일을 하든 네 일을 사랑해라. 네가 어린 시절 영사실을 사랑했던 것처럼'.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저 큰 세상으로 나가서 네 꿈을 펼쳐라'. 

 

이제 생각하니 청년이 된 토토가 사랑과 미래에 대해 고민할 때 현실의 무게를 일깨워주었던 알프레도의  이런 대사들은

어쩌면 젊은 날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알프레도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젊은 날의 꿈을 토토를 통해서 이루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은 순서에 관계없이 이어집니다. 

극장의 화재, 젊은 연인들, '마리아 델 루메 교회' 앞을 지나는 알프레도의 장례식 장면,

 

 

화재가 일어나자 합심하여 불을 껐던 동네사람들이 지친 표정과

촬영이 끝나면서 해체되는 극장 세트장,

 

 

중년의 토토 역을 맡은 '자크  페랭'의 도회적인 감성도 좋았고

토토의 어린 시절을 지탱해 준 정신적인 지주 역할의 알프레도, '필립 느와레'는 무게감이 있었지요.

토토의 어머니를 연기한 '안토넬라 아틸리'의 노년 분장도 보입니다.

전쟁 중에 남편을 잃고 혼자서 자식을 키워낸,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어머니의 역을 잘 소화했던 배우였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갔던, 이제는 중년이 된 두 사람의 재회도 가슴 시린 장면이었네요.

 

 

1989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199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 수상했던 영화.

 

12세의 나이에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토토, '살바토레 카스치오'는

 

 

매스컴을 타면서 유명해졌고 그 후 아역 배우로 몇 편이 작품에 출연했지만 희귀한 질환으로 점차 시력을 상실, 연예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답니다.

지금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업을 물려받아 'L'Oscar dei Sapori'라는 B&B를 운영하고 있다지요.

 

아래 가운데 사진에는 이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던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토토 역의 '살바토레 카스치오',

그 사진 양쪽의 신문기사에서는 성장한 토토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린 토토가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옆에는 젊은 날의 풋풋한 토토를 연기했던 '마르코 레오나르디'도 있습니다.

 


박물관 밖으로 나와 알프레도의 거대한 초상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극장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내부 장면을 촬영했다는 '카르멜로 성모 성당(Chiesa di Maria  Santissima  del Carmelo)이 나옵니다.

 

 

내 어린 시절의 극장 풍경,

정의가 승리하면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고 악당이 등장할 때는 일제히 발을 구르며 야유를 보냈던 관객들,

슬픈 장면이 나오면 여기저기에서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요.

통로에는 좌판을 목에 건 행상이 돌아다녔고 2층에서 던진 쓰레기로 시비가 붙는 일도 다반사였네요.

그런 추억을 모두 담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거리의 벽화 중에는 영화 속에서 알프레도가 토토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는 장면과 

그가 토토에게 해준 말, '어떤 일이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했던 영화 속의 대사도 적혀 있습니다.

 

 

동네엔 토토가 집안에 숨겨둔 영화 필름 때문에 작은 불이 나자 어머니가 토토를 야단치던 장면의 

 

 

토토의 집도 보이고

 

 

알프레도의 집은

 

 

 

성인이 된 토토와 시력을 상실한 알프레도가 같이 서 있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한때 이렇게 거대한 성벽까지 있었던 마을, 

 

 

오밀조밀 

 

 

재미있게 장식한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 낡고 인적이 없었습니다. 

작은 산골마을, 여기도 젊은이들이 모두 빠져나가면서 노인들만 남아 있었네요.

 

 

전설 속의 마을이 될까 봐 걱정스러웠습니다만  

 

 

아직은 밤풍경도 저렇게 예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