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니스의 남서쪽, 105km 거리에 있는 '두가'의 고대 이름은 '투가(Thugga)'.
원래 베르베르 왕국인 누미디아의 도시였다가 카르타고를 거치면서 로마 제국 시대에는 번영을 누렸지만
반달족의 침입 후 버려지고 지진으로 무너지면서 잊힌 땅이 되었습니다.
투니스의 '밥 사둔(Bab Saadoune)' 루아지 터미널에서
'테부르수크(Teboursouk, 15 TDN)'까지 1시간 40분 거리,
거기서 왕복 이용과 3시간 대기 조건으로 택시를 대절(35 TDN), 6km 거리인 이 고대 로마 유적지에 왔습니다.
예정에 없던 두가에 꽂혀 충동적으로 출발했지만 오늘은 밤배로 시칠리아에 가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금'인 날이었네요.
달리는 내내,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기가 아프리카 맞나 싶을 정도로 녹색의 아름다운 초원이었습니다.




입장료는 8 TND.


들어가면서 약도와

상상의 도시 형태를 보며 와, 그 다양함에 놀랐습니다.
그 시대에도 신전과 극장, 요새와 저택, 포름이며 목욕탕, 저수조에 시장들을 갖춘, 도시 전체가 야외박물관이었지요.

유네스코 문화유산입니다.

여기 유적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좋았던 극장은 관객 3500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던 큰 규모.
대리석 기둥을 일부 복원하여 고대 로마 극장의 웅장함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뛰어난 음향 효과와 보존 상태 덕에 매년 여름에는 '두가 국제 페스티벌'도 열린다네요.

야외학습 중이던 학생들 모두, 이방인인 우리에게 하트를 날리며 따뜻하게 맞아 주었네요.

관람석 꼭대기에서 보는 전망은 최고!
무대와

두가의 넓은 유적지(23만 평),

그 아래 펼쳐진 '칼레드 계곡'의 올리브 밭과

밀밭이며 농가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봄날의 야생화도 한창이었네요.


극장 근처에는 이 지역의 부호로 건설 재정을 담당했던, '마르키우스 막시무스'를 기리는 비석도 있습니다.

두가 유적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물로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카피톨리움은
'유피테르(주피터), 유노(주노), 미네르바(아테나)'에게 봉헌한 신전으로
서기 2세기 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 공동 황제 시대에 건설하였답니다.
6개의 8m 코린트식 기둥, 전면의 박공에는 독수리가 한 남성을 움켜쥐고 하늘로 올라가는 부조가 보입니다.
로마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서약의 한 방식이었다지요.

비잔틴 제국 시대에 세운 요새의 거대한 저 방어벽 일부와

감시탑을 보면서 언덕을 돌아나가면

들판의 끝없는 채석장, 이 도시를 만들었던 채석장이 나옵니다.

거기 남쪽의 '키클롭스 목욕탕'에서 그 바닥을 장식했던 모자이크화,

외눈박이 거인인 키클롭스가 등장하는 '키클롭스 대장간'은 출토 당시 큰 화제였답니다.

근처에 있는 또 하나의 목욕탕, '리키니우스 목욕탕((Licinian Baths)은 '안토니누스 카라칼라 황제' 시기에 '리키니우스' 가문의 후원으로 지은 곳.
그러면서 '리키니우스 목욕탕', '카라칼라 목욕탕', '안토니누스 목욕탕'까지, 명칭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목욕탕의 중앙 하단, 아치형 입구는 당시 노예들이 온돌 구조에 땔감을 나르고 불을 피우던 지하통로로

냉탕과 온탕까지 사용할 수 있었던, 그 당시 로마의 건축 공학과 이들의 화려한 생활을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이 목욕탕의 바닥을 장식했던 모자이크화는 바르도 박물관에서 보았던 '율리시스와 사이렌'.

거기서 아래 마을로 내려갔다가 인적이 없기에 다시 중심지로 이동하면서 들른 '콩코르디아 신전'은
화합을 상징하는 여신, '콩코르디아(Concordia)', 풍요의 여신, '프루기페르(Frugifer)', 포도주와 자유의 여신인 '리베르 파테르(Liber Pater)'까지 모두 세 여신에게 헌정한 복합사원입니다.
아칸서스 잎이 정교하게 조각된 코린트 식 기둥을 복원해 놓았습니다.
여신들은 도시의 중심광장인 포룸 옆에서 종교적, 사회적 화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었지요.

근처 '바람의 광장'에는 각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이름을 라틴어로 음각해 놓은 고대의 방위도, '바람의 장미(Place de la Rose des Vents)가 있답니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했던 날씨를 바람의 방향으로 예측했던 것.
그러나 확인은 못했네요.
멀리 올리브 숲 속에서 이질적으로 보였던 '리비아-쿠니크 기념탑'은

고대 로마가 아니라 그 이전, 기원전 2세기의 토착 누미디아와 카르타고의 융합 문화를 보여주는, 누미디아 왕국의 건물로 당시 귀족이었던 '아테반'의 탑 모양 무덤입니다.
이 탑이 세계 고고학사에서 아주 중요한 이유는 외벽에 새겨져 있던 2개 국어의 비문 때문.
동일한 내용이 고대 리비아어(베르베르어의 조상)와 푸티크어(카르타고 언어)로 적혀 있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이 고대 리비아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던, 학술적인 가치가 큰 유적입니다.
1842년 당시 튀니스 주재 영국 영사가 이 비문을 탐내어 무단 반출, 본국으로 보냈고 이 과정에서 탑 전체가 붕괴되었지만 이후 1900년대 초, 프랑스 고고학자 루이 푸앵소의 감독 하에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네요.
3층에는 말을 탄 기사 조각이 있고 삼각 지붕 모서리에는 날개를 편 스핑크스 조각이 하늘을 향해 앉아 있습니다.

탑의 중간, 죽은 자의 명복을 기원하며 저런 부조를 새기는 일은 당시 누미디아 인들의 풍속이었지요.

근처 로마 양식 돌기둥의 귀족 저택, '트리폴리움(Trifolium House)의 집' 중심부,

1층 안뜰에는 분수와 정원을 복원해 놓았습니다.
이 저택은 그 쓰임에 여러 가지 설이 있는 듯합니다.

이어지는 '바알 - 사투르누스' 신전은 로마와 카르타고의 문화가 융합된 장소로
원래 뉴미디아인들이 농경의 최고신인 '바알 함몬'을 모셨던 것.
로마 제국 시대에 재건하면서 같은 성격의 로마 신인 '사투르누스 신전'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지금은 이름도 융합된, '바알 - 사투르투스'로 그 명칭이 굳어졌습니다.

'빅토리아 교회(Church of Victoria)'는 대리석 석관과 성물이며 제단의 흔적이 남아있는,

순교자를 모신 기독교인의 성소입니다

여기는 도심 외에도 방대한 지역에 산재한 유적이 워낙 많아서 땡볕의 3시간으로는 돌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무너져 내린 유적의 파편들,




곳곳에 나뒹구는 잔해가 안타까웠지요.



순간의 영광, 긴 침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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