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튀니지, 몰타, 시칠리아

아그리젠토(Agrigento, 신전의 계곡)

좋은 아침 2026. 5. 25. 20:43

'모든 일이 잘 되길 바라요.

당신들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이에요'.

 

아그리젠토 일정을 마친 후  숙소를 떠나는 우리에게 

영어 서툰 안주인 '후로라(Flora)'는 번역기를 사용, 이런 인사말을 남겼습니다.

아, 친절했던 후로라!

전망 최고였던 숙소에서 따뜻한 빵과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잘 지냈습니다.

고마워요.

 

 

이렇게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 곳은 '아그리젠토'.

 

팔라초 아드리아노의 감동을 간직하고 택시를 이용, 인적 드문 아름다운 구릉지대를 달려서 아그리젠토에 왔습니다. 

드물게 떠나는 버스 시간도  말하는 사람마다 모두 달랐던 팔라초 아드리아노에서

오후 일정을 위해서는 오전에 떠나야 했고 그게 택시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거든요.

택시 요금 때문에 속은 쓰렸지만 길가의 전원 풍경만은 최고였네요

 

 

시칠리아에는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5백 년간 그리스의 식민 도시가 많았지요.

기원전 4세기가 되자 알렉산더 대왕이 한차례 휩쓸고 간 그리스 본토는 이어진 로마의 지배로 쇠퇴기에 들어가면서 1830년에야 겨우 독립.

2,0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로마의 지배를 받아온 이 나라에 살아남은 유적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에 마그나 그라치아(Magna Graecia, 시칠리아와 나폴리 남쪽 해안에 있던 그리스의 식민도시를 통틀어 부른 명칭으로 ‘위대한 그리스’라는 의미. 시라쿠사, 아그리젠토 등)의 식민도시들은 번영의 시대를 맞습니다.

그러니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인 곳은 쇠퇴기의 아테네가 아니라 풍요로운 마그나 그라치아의 도시들이었다는 것.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철학, 예술, 건축과 종교를 답습하면서 그들의 학문을 받아들입니다.

전성기에도 인구가 20만을 겨우 넘었던 작은 폴리스,  아테네에서 시작했던 고대 그리스 문화는 이렇게 로마 문화와 서구 문명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정복당한 그리스는 사나운 정복자(로마)를 사로잡았고 거친 라티움에 예술을 전해주었다'고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말했다지요.

동로마 지배 시기까지 포함한다면 시칠리아에 고대 그리스 문화가 영향을 끼친 기간은 기원전 8세기에 시작하여 사라센이 쳐들어오는 기원후 9세기까지, 사실상 1700년에 가까운 세월이었습니다.

이렇게 긴 사설은 아드리젠토의 고대 그리스 유적은 그리스 본토보다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것과 그 이유를 알리기 위함입니다.

 

아래 지도에는 그리스 식민 시대의  시칠리아에 정착한 민족과 그리스의 식민도시들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초록색은 페니키아, 카르타고인의 정착지,

청색은 엘리미아(시칠리아 서부의 고대 부족)의 땅이었지만 

군청색인 북쪽과 동쪽, 남쪽의  절대다수는 마그나 그라치아의 차지였지요.

 

 

숙소에 짐을 놓고 곧 후로라의 딸, 세레나의 차를 얻어 타고

시내에서 3km 거리인 유네스코문화유산, '신전의 계곡'에 왔습니다.

고지대의 '젤라(Gela) 문'으로 들어와 동쪽 비탈길로 내려가면 매표소. 

 

 

신전의 계곡  매표소 오픈 시간은 오전 8시 30분 ~ 오후 7시,

오후 8시 전에 퇴장해야 합니다.

요금은 계곡 관람일 경우, 일반은 16유로, EU 시민은 반값, 18세 미만 청소년은 무료. 

계곡과 박물관 관람 통합권은 19.20유로,

계곡과 콜림베트라 가든 관람 통합권은 20유로.

 

 

여기는 팔레르모의 노르만 시대보다 1600년이나 앞선, 기원전 5세기의 고대 그리스 신전이 모여 있는 곳,

그리스 문명의 도리아식 신전 20여 개가 5km 내에 모여 있는 이 ‘신전의 계곡’은

로마 속국이 되기 이전인 마그나 그라치아 시대의 유적, 지금의 그리스 본토에서는 찾기 어려운 오래된 유적들입니다.

 

Via Sacra(성스러운 길)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Giunone (헤라 신전) - Concordia (콩코르디아 신전) - Ercole (헤라클레스 신전)  - Zeus Area Castore(제우스 신전 지역)  - Templo of Dioscuri 신전(Castore e'Polluc'e, 카스트로와 폴룩스의 쌍둥이 신전)까지  용암이 굳은 응회암의 황갈색 건물이 길게 이어집니다.

 

 

왼쪽(북쪽)으로 아그리젠토 시내를 보며 들어가는 길,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 식민지로 건설된 고대 도시, 아크라가스(지금의 아그리젠토)의 유적은

고대 그리스의 도리스 양식 신전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뛰어난 고고학 유적지 중의 하나로 인정받으면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4개 국어 기록이 보입니다. 

 

 

계곡이 아닌 바다가 보이는 높은 언덕,

고대 그리스인들은 배를 타고 오가며 도시의 위엄을 볼 수 있도록 신전을 능선에 배치하였다지요.

처음 만난 주노(헤라) 신전은 기원전 440년에 세운 것으로 30개의 기둥 중에 현재 25개의 기둥이 복원되었습니다. 

 

 

406년,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 군대에게 공격을 받았지만 로마 지배 시기에 보수를 했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의 '헤라 신전'은 로마의 '주노'에게 헌정되어 이름도 바뀌었지요. 

 

 

그 옆에는 이 신전의 평면 구조와 기둥 배치를 설명하는 입체 모형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주노 신전과 콩코르디아 신전 사이의 북쪽 성벽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메크로폴리스(공동묘지)'가 보입니다.

 

 

4 ~ 6세기 비잔틴과 초기 기독교 시대의 기독교인 무덤이랍니다.

 

 

이어서 나오는 '의인의 정원' 안내판에는 

'대량학살, 고문, 폭격, 끔찍한 전체주의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세상이 비인간적으로 변하지 않도록 묵묵히, 그리고 종종 이름 없이 헌신했던 세상의 의인들에게 바칩니다.'이라는 헌사가 있었지요.

잠시 숙연해지는 시간!

불의에 맞서고 인권을 찾기 위하여 싸운 전 세계 의인들을 기리는 장소입니다.

 

 

멀리 '콩코르디아 신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기원전 5세기에 지은 이 건물은 지붕을 제외한 사방의 기둥과 외벽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습니다.

 

 

한때 기독교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꾸준히 유지, 보수한 덕분이라네요.

 

 

신전 앞에는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가 기증한 거대한 청동상,  '날개 부러진 이카로스'가 보입니다.

미노스 왕의 크레타 섬에 갇힌 다이달로스는 탈출을 도모,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루스에게도 달아주면서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 경고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높이 날다가 태양의 열에 날개가 녹으면서 그대로 바다에 추락하였지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콩코르디아 신전은 '화합과 조화'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카루스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다 추락하는 '과도한 야망과 오만'의 상징이었지요.

조화롭고 완벽한 질서 앞에서 인간은  '균형과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적인 조각이랍니다. 

 

 

이카루스의 날개 안쪽에는  '메두사'가 새겨 있습니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땅을 지켜온 강인함과 생명력을 가졌던 시칠리아인들.

그들은 메두사를 악운을 쫓고 집안을 지켜주는 강력한 부적으로 여겼답니다. 

시칠리아의 공식 깃발인 '트리나크리아(Trinacria)' 속에도 메두사가 등장합니다. 

비록 추락은 했지만 조각가는 그의 날개에 이 얼굴을 새기면서 새로운 희망을 주고 싶었을까요? 

시칠리아에서는 이렇게 메두사의 신화 속 이미지가 달랐습니다.

 


신전 앞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올리브 고목의 용틀임이 보입니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같았네요.

 

 

아카란다 보랏빛 꽃이 피어 있는 'Via Sacra(성스러운 길)'를 따라가는 길 옆으로

 

 

채석장을 이용한, 지중해 스타일의 ‘콜림베트라(Giardino della Kolimbetra)’ 정원이 시작됩니다.

그리스인의 수로를 활용한 9세기 아랍식 정원입니다.

 

 

 

꽃이 만발한, '빌라 아우레아(Villa Aurea, 황금의 집)'는 부유한 고고학자, '알렉산더 하드캐슬 경(Sir Alexander Hardcastle)'의 개인 저택이었답니다.

그는 전재산을 들여 신전의 계곡 유적을 발굴하고 기둥을 다시 세우는 복원 작업을 지원하였지요.

그의 사후 저택은 신전의 계곡 관리사무소로 이용되면서 한쪽은 전시실로 개조, 

현재 아그리젠토 출신인 화가, '파우스토 피란델로'의 사후 50주년 기념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신전의 계곡에서 가장 오래된  Ercole 신전(헤라클레스 신전)은 지진으로 무너졌던 잔해 중 남쪽 면의 8개 기둥을 복원해 놓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웅장합니다. 

 

 

제우스 신전은 원래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으로 만들 계획이었다지요.

 

 

3D 그래픽으로 원형을 복원한 신전은

기둥 높이 20m, 기둥과 기둥 사이 벽에는 높이 8m인 인간 석상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축구장 크기의 건물!

 

 

그러나 기원전 480년, 카르타고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여 고대 그리스 인들이 건설 중이던 이 신전은 406년의 그들의 재침공과 지진으로 미완의 잔해만 남았습니다.

 

 

'Templo of Dioscuri 신전(Castore e'Polluc'e, 카스트로와 폴루스의 신전)'의 주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 카스트로와 폴루스랍니다.

항해사와 말을 타는 사람들이 수호신이지요.

 

 

그러나 신을 위한 제사 흔적과 구덩이가 발견되면서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와 그녀의 딸인 페르세포테를 모시던 성소였을 가능성도 있다 했네요.

여기 역시 카르타고의 침공으로 불에 타고 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졌으나 

1836년에 34개의 도리아식 기둥 중 4개와 상부 일부를 다시 세웠답니다.

 

 

이제 우리는 서쪽 출구, 포르타 퀸티아(Porta Quinta)에서 2번 버스(1.4유로)를 타고 시내로 나갑니다. 

그리스보다 더 그리스적인 유적을 볼 수 있는 곳, 아그리젠토.

2,000년의 시간도 순간이었네요.

 

 

다시 돌아온 숙소, 여기서는 지중해와 신전의 계곡이 모두 보입니다.

 

 

해질 무렵에는 이 신전들은 석양에 물들어 황금빛으로 반짝거린답니다.

밤새 빛나던 콩코르디아 신전과 오른쪽의 유노 신전은 

 


날이 밝아지면서 침묵에 잠겼습니다. 

 

 

우리 방 창문에서도

 

 

식당에서도 보이던 그 풍경!

 

 

그대 그리스의 작품인 양 

 

 

뜰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도기들.  

이 땅의 그리스 문명을, 그리스 문화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중해의 햇빛 속에서 잘 자라는 기린 선인장과 제라늄처럼

국가 부도 위기에서 벗어난 지금의 그리스도  잘 사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