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나 그라치아, 위대한 그리스 시대.
기원전 730년경 그리스 이주민들이 건설한, 식민도시 시라쿠사는 한때 아그리젠토와 더불어 그리스 본토보다 더 번창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학교를 세우고 유클리드가 새 학설을 발표하고 아르키메데스가 신무기를 만들어내는 최첨단의 고장’이었다지요.
풍부한 역사와 문화, 원형극장, 건축물을 가진 도시로 기원전 5세기에는 아테네 규모로 성장했지만 이후 로마와 비잔틴제국의 영토가 되었다가 1860년에 통일 이탈리아에 흡수됩니다.
에트나에서 늦게 출발, 카타니아에서 시라쿠사까지 오는 사이에 밤이 되었습니다.
늦은 시간, 낯선 동네에 들어서면서 저 아름다운 모습에 긴장이 풀어졌네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장에서 산화한 장병들을 추모하는 '산 토마소 알 판테온 교회'입니다.

다음날 아침, 시라쿠사 시내에서 두 개의 다리로 연결된 '오르티지아(Ortygia)'에 갑니다.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 왼쪽의 멋진 '오르테가 팰리스 호텔'을 바라보며

섬으로 들어가는 '움베르토 1세 다리'에는 세계적인 수학자,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의 청동 동상이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지중해를 향해 빛을 반사하는 오목거울,

왼손에는 그의 연구에 핵심적인 도구, 컴퍼스를 쥐고 있었지요.

그의 발밑에는 그리스어 대문자, '찾았다, 깨달았다'는 뜻의 단어, '유레카(UREKA)'가 쓰여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황제의 왕관이 순금인지 은이 섞였는지 알아내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목욕탕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순간 깨달음이 있어 벌거벗은 채 '유레카'라 외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로마 군선들을 향해 청동 거울(반사경)로 햇빛을 반사시켜 병사의 눈을 멀게 하고 군선에 불을 질렀다.'
그의 천재성, 연구 몰입도를 강조하는 이런 일화를 요즘 아이들은 믿지 않겠지요?
그가 전쟁 중에 고향을 지키기 위하여 빛 반사경, 투석기들을 발명한 것들은 사실이었답니다.
그러나 막강한 로마군이 포진한 2차 포에니 전쟁의 전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지요.
로마군의 장수는 아르키메네스의 천재성을 아껴
'절대로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 명령을 내렸지만 마당에서 원을 그려놓고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무심코 그 원을 밟았다가 야단맞고 화가 난 병사의 칼에 죽임을 당합니다.
수학 분야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메달에는 그의 얼굴이 새겨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학자, '허준이'도 이 상을 받았지요.

안내판에는
14개의 조각으로 사각형을 만드는, 17,152 가지의 서로 다른 조합이 가능함을 알리는 스토마키온(Stomachion),
이 조합은 아르키메데스의 전 생애와 사상을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연결한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동상 받침대에는 아르키메데스의 발견과 발명품을 상징하는 14개의 심벌이 새겨 있습니다.
이 퍼즐의 기호와 상징은 그가 평생 탐구했던 기계학, 대수학, 천문학과 관련이 있다지요.
내게는 너무나 난해한,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을 만났다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시라쿠사의 볼거리가 담긴 안내판을 보며

'Urbica Porta',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기원전 6세기 초에 세운, 시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아폴론 신전'이 있습니다.
전체 구조를 돌기둥으로 세운 최초의 건물이랍니다.
그러나 로마 시대의 '아폴로 신전'은 비잔틴 시대에 성당으로 쓰였고 아랍 지배기에는 모스크, 노르만 시대에는 다시 성당으로,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시대에는 군 막사로 사용되면서 점점 무너져 내렸지요.
지금의 모습은 19세기부터 발굴, 일부 복원된 모습입니다.

쾌청한 날씨,
섬 안에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두오모 광장에도 사람이 많았습니다.

기원전 5세기에 지은 아테나 신전 역시 기독교 성당(Catedrale di Siracusa)으로 쓰이다가 시칠리아 대지진 이후 앞면은 바로크 양식의 코린트 기둥으로 화려하게 개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당 내부에는 아테나 신전의 외곽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요.
비잔틴 제국시기에는 이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을 메우며 아치 구조를 만들었고
9세기에는 아랍 지배 시기에는 모스크로 사용,
1693년의 대지진 후에는 전면을 시칠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바꾸면서
이 성당은 고대 그리스 신전, 모스크, 비잔틴의 아치와 바로크 양식이 한 건물 안에 공존하는,
고단했던 시칠리아의 역사를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안에는 시칠리아 출신의 초기기독교 여성 순교 성인, '성 루치아'의 초상이 있고
그 아래 은으로 만든 작은 함 안에는 성유물(聖遺物)을 신성시하는 가톨릭 전통에 따라 그의 팔 뼈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근처의 '산타루치아 알라 바디아 성당(Cheisa di Santa Lucia alla Badia)' 안,

중앙 제단의 그림, '데오다토 구이나차'가 그린 '성 루치아의 순교'에는

순교 직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지요.
기독교 박해 당시 시라쿠사의 이교도 총독은 성 루치아의 신앙을 꺾기 위하여 매춘굴로 보내려 했지만 군인들이 달려들어도, 황소를 동원해도 움직이지 않자 화형에 처하려 했으나 그것도 실패, 한 군인이 그의 목을 찌르면서 죽게 됩니다.
위에서는 성모와 아기 예수, 천사들이 그를 맞이하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굽어보고 있습니다.

성당 지하로 내려가니 화가 '카라바조'가 시칠리아에 머물 때 그렸다는 ‘성 루치아의 장례식’이 있었지요.
위의 '데오다토 구이나차'의 그림이 세세한 설명이라면
아래 '카라바조'의 그림은 한 방의 강렬한 펀치였네요.
배경을 삭제하고 바닥의 주검과 무덤 파는 인부의 근육을 부각한, 빛과 어둠의 대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숨을 고른 다음
오르페우스를 구애를 피해 도망 다니던 요정, 아레투사가 다이애나 여신의 도움을 받아 여기 샘물로 변했다는,
이제는 파피루스가 자라는 '아레투사의 샘'을 보며

섬의 남쪽에 있는 13세기 요새, '모니아체 성(Castello Moniace)'으로 갑니다.

한때 이 지역을 점령했던 아랍인을 물리치고 되찾은 기념으로 세운 요새랍니다.

그 한쪽에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작은 해변도 있습니다.
삼면에서 보이는 지중해의 환상적인 저 물빛!!!!!!!!!!!!

다시 도심으로 들어와

섬 중심의 '아르키메데스 광장'에 있는 '다이애나 분수(Fontana di Diana)'를 지나면서
'아레투사의 샘물' 이야기를 조각으로 만났습니다.
여신 뒤에서 깜짝 놀란 오르페우스, 손을 뻗었지만 아레투사는 이미 물줄기로 변하고 있었지요.

아폴로 신전 앞, 시장 안의 유명한 샌드위치 가게에 왔습니다.
맛집답게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북적.
천장에 매달아 놓은 햄이며 치즈들이 재미있습니다.
반을 먹어도 배가 부른 가성비 좋은 샌드위치를 사 들고

이웃 가게에서 고소한 오징어 튀김과 맥주 곁들여 점심을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네요.

한낮의 더위를 피해서 숙소에 돌아가 잠깐 쉰 다음 오후에는 네아폴리스 고고학 공원(고적지대)에 다녀왔습니다.
매일 오전 8시 30분 오픈. 폐장 시간은 오후 3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로 계절과 요일에 따라 다릅니다.

'디오니시우스의 귀(Ear of Dionisius)'를 찾아

석회암 채석장 지역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거대한 인공 석회암동굴.
입구의 생김새가 사람의 귀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내부 소리가 크게 증폭되는 독특한 음향구조로
폭군 '디오니시우스 1세'가 죄수를 이 동굴에 가두고 입구에서 그들이 감옥 생활 중에 나누는 비밀을 도청했다는 이야기로 '디오니시우스의 귀(Ear of Dionisius)'라는 이름도 얻었습니다.
그는 '이상국가론' 주장하는 플라톤의 말이 듣기 싫다며 노예로 팔아버린 군주였지요.
친구들이 급히 나서서 팔려가기 직전의 플라톤을 구해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망의 그리스 극장에 왔지만 큰 행사를 앞두었는지 엉망으로 단장을 해놓아 실망스러웠습니다.
기대했던 곳이라서 저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싸늘해졌지요.
곧 자리 이동,

여기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입니다.
140m × 119m의 거대한 타원형의 이 경기장은 일반적인 로마의 원형극장과 달리 자연 암반을 깎아 만들었습니다.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후 3~4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극장은 검투사 경기와 맹수 사냥 경기를 보려고 지은 것.

중앙 지하의 사각형 공간은 검투사나 맹수를 경기장 위로 올리는 승강기 장치와 배수 채널이 있던 곳으로 튀니지의 엘젬 원형경기장과 같은 구조입니다.

시라쿠사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자주 시야에 들어왔던 저 특별한 형태의 교회는 '눈물의 성모 성지(Santuario Madonna delle Lacrime)'.

1953년, 시라쿠사에 사는 '안토니나'가 임신중독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을 받다가 아침에 눈을 뜨자
침대 머리맡에 걸려 있던 성모상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답니다.
반신반의하는 가족, 이웃,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확인한 결과, 4일간 계속 이런 일이 이어졌다지요.
이는 가톨릭 교회가 과학적으로 검증한 극소수의 사례.
당시 교황 비오 12세의 추인을 받고 '눈물 흘린 성모상'을 전시한 이 건물을 지었답니다.

성당 안내판에는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성모의 눈물'은
'인간의 고통과 죄, 전쟁에 대한 어머니의 슬픔을 나타내며 사람들에게 회개와 기도를 촉구하는 신호'라네요.

내일은 포짤로항까지 2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 거기서 배를 타고 몰타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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