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창의문로에 있는 '서울미술관'에서는
'우리 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기고 간 故 천경자 작가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특별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를 열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환상적인 세계관을 짙은 채색의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지만 '미인도 위작'에 휘말리면서 절필을 선언, 뉴욕으로 나갔다가 2015년 91세로 세상을 떠났지요.

전시회는 작가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6개의 장으로 나누어 '위대한 예술가, 천경자'를 추모하고 있었네요.

제1장 서두는 '저작권과 작품을 사회에 환원한 최초의 화가'였던 고인의 독보적인 업적에 따라 금관 훈장 추서가 타당하다는 미술계의 입장 표명으로 시작합니다.

제2장의 '개인전마다 장사진...., 위대한 귀환'에서는
초기의 그림과 함께 대중적인 인기가 대단했던, 예전의 전시회 상황을 알리고 있었지요.



그림 중에는 '금붕어 8폭 병풍'과

어린 딸을 그린 '夏日',

이국의 항구 풍경도 나옵니다.

제3장, '포탄 속에서도 피어난 꽃'에는 베트남 전의 유일한 여성 종군작가였던 그의 병사들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제4장, '세계를 누비며 자신을 해방시켰던 천옥자'에서는 작가가 여행 중에 쓴 글과 그림이 담긴 세계풍물기행을 소개하고 있었지요.
옥자는 작가의 본명입니다.

40대 후반부터 타히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아프리카, 인도와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거기에서 받은 인상과 전 세계 예술가들의 흔적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외국여행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대, 작가의 스케치 기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과 감동을 주었지요.
20여 년의 홍익대 교수직을 사임하면서 찾았던 아프리카 여행 이후, 작가의 화풍은 획기적으로 바뀝니다.


발리섬의 천을 짜는 여자들과

밸리댄서며 토속복장의 아프리카 여인들도 소품 속에 등장했네요.



인도 '아그라의 무희'와

타히티의 '청춘',

스페인, '그라나다의 창고지기 여인'과

일본의 '아이누여인',

태국의 '무희' 등 이국의 여인들도 화사한 색감으로 생생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그의 스케치 기행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습니다.
![]() |
![]() |
![]() |
![]() |
제5장에서는 여성의 초상화들이 등장합니다.

작가의 그림만큼이나 강렬한 색깔의 전시장 안,


가부장 시대의 억압, 관습적인 여성상을 벗어버리고 사생활 논란과 질시 속에서도 꿋꿋하게 한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작가가

그림으로 표현한 이국의 여인들은


모두 작가의 분신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그림, '길례언니'도 나왔네요.

제6장, '예술이 된 책'에서는

탁월한 글 솜씨로 당대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작가의 에세이집 표지화와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문학전문지의 표지화며 삽화까지, 미술과 문학을 넘나들었던 작가의 다양한 활동이 보입니다.


전시장 안에 소개된 작가의 글, 몇 구절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꽃과 고독하고 몽환적인, 그러면서도 강인한 표정의 여성을 주로 그렸던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지나온 길이 평탄하지 않아 눈이나 비, 꽃과 친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에서 얻어지는 고독한 행복감에 젖어 오직 작업하는 일만이 편한 길이었다.
저서, '탱고가 흐르는 황혼' 중에서.
내 마음 속에 환상이 있는 한 나는 어떤 비극에도 지치지 않고 살고 싶어질 것이다.
나의 삶은 그림과 함께 인생의 고달픈 길동무처럼 멀리 이어질 것이다.
저서, '탱고가 흐르는 황혼' 중에서.
![]() |
![]() |
2015년 8월, 91페이지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천경자.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남긴 글도 많습니다.
천경자에게 매료되었던 '토지'의 작가, 박경리도 이제는 저 세상 사람.
두 분, 거기서 다시 만나셨지요?



한쪽에는 작가의 일생,

91페이지의 연보가 보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을 끌었던 것은 1978년, 54세 때의 이력.
생애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였네요.

그러나 '환상여행'은 미완으로 남았습니다.

이제는 10주기, 101페이지를 펼쳤습니다.
바람 부는 벌판에서 꽃과 화구를 들고 홀로 서 있는 작가의 모습이 내 마음을 시리게 합니다.

이 추모의 메시지가 고인에게 위로가 될까요?

먹먹한 마음을 정리하며 미술관 4층에서 이어지는 정원으로 나왔습니다.
여기 석파정(石坡亭)은 조선 말기에 지은 근대유적이며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서였던 고택으로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울리면서 우리 조상들의 풍류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안채와

고종이 私家에 다니러 왔을 때 침소였다는 별채며 협문에

달항아리가 보이는 사랑채 옆에는

650년 수령의 노송, '천세송'이 서 있고

그 뒤로 큰 거북이 형상의 바위에 새긴 삼계동(三溪洞) 각자가 있습니다.
3개의 시냇물이 이 계곡에서 만난다 하여 붙은 이름이랍니다.

긴 산책길과
![]() |
![]() |
석파정을 짓기 전부터 있었다는 바위에 새긴 글자(암각자, 岩刻字) , 아름다운 풍광을 표현한 '소수운렴(巢水雲簾)'도 있습니다.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이라는 시적인 표현이었지요.
그 위에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시대의 석탑, '신라삼층석탑'도 있습니다만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고택과 같은 이름의 정자 '석파정(石坡亭)'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탑 앞에서

숲 속의 마을과 성곽 두른 북악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서울을 발견한 기쁨,
거기에 왕이 머물렀던 공간, 단풍 속에서 그 비밀의 정원을 산책하고 귀한 그림도 만났던 행복한 날입니다.
![]() |
![]() |
'문화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0) | 2026.02.05 |
|---|---|
| 8월의 덕수궁 (0) | 2025.08.20 |
|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전시회 (0) | 2024.10.16 |
| 과천현대미술관 전시, '이신자, 실로 그리다' (0) | 2024.01.04 |
| 과천현대미술관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0) | 2024.01.0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