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목적지인 괴산군 연풍면의 조령산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에
인근 단양에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기에 잠깐 들렀습니다.

시루섬 중간에 하얀 탑을 세운 보랏빛 현수교, 출렁다리입니다.

1972년 태풍으로 남한강이 범람하자 강 안의 시루섬에 살던 주민 201명은 높이 6m의 물탱크 위로 대피,

그 작은 공간에서 젊은이들은 노약자와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가장자리에서 서로 팔을 낀 채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으려 결사적으로 버티다가 하룻밤이 지난 14시간 만에 구조됩니다.
훗날 사람들은 이를 '시루섬의 기적'이라 불렀고 여기에도 기록을 남겼습니다만
그 와중에 겨우 백일을 넘긴 아기가 죽었지요.

아기의 죽음을 알고도 주민들의 목숨 건 사투 속에서 내색도 못하고 슬픔을 삼켰을 젊은 엄마의 처연한 눈빛은 다시 봐도 마음이 아팠네요.
이제 시루섬은 충주댐이 생기면서 수면이 높아져 지금은 전과 달리 크기가 대폭 줄어든 무인도가 되었고
작은 기록과 조각만 해 놓았던 자리에는 거대한 탑과 기념비적인 다리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이 휴장일인 화요일이어서 다리 안으로 들어가 걷지는 못했지요.
운영시간 09:00~18:00. 입장 마감 17:30. 입장료 무료.

그 옆에는 새롭게 단장한 이끼터널도 있습니다.


충주호 호반을 달리는 길,
악어섬을 볼 수 있는 전망대 쪽으로 악어 육교까지 등장했지만

날씨가 흐려지면서 호수 풍경도 온통 회색빛이어서 아쉬웠습니다.



다음날은 연풍면 구경에 나섰습니다.
조령산자연휴양림을 여행 기점으로 이용하면서 늘 지나쳤던 동네입니다.

폭우로 수량이 많아진 수옥폭포를 보면서

맑아진 날씨에 감사하며 그 위에 있는 '수옥저수지'로 갔습니다만

그러나 금방 흐려진 날씨.
주변의 높은 산들은 모두 운무 속에 잠겼지요.

나무 데크길을 돌아


아치의 돌다리를 건너면

자그마한 정원, '수옥정원'과 수옥물놀이터가 나옵니다.

꽃길 따라 정원 안을 산책하다가

다시 이동, 연풍면의 면사무소인 멋진 건물, '연풍헌'을 지나

'연풍성지'에 왔습니다.
여기는 1791년의 신해박해 이후 조정의 탄압을 피하여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었던 산간의 교우촌이었고
1866년의 병인박해 때에는 수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어 순교한 성지입니다.
개방 시간은 09:30~17:30. 무료, 주차장 이용 가능.

문안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신자들을 처형할 때 사용하였다는 형구돌.
죄인의 목에 밧줄을 걸고 반대편에서 당겨 처형하거나
교수형을 집행하는 데 쓰였던 이 도구는 순교의 참혹한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서늘해지는 마음으로 성지 안내도의 번호를 따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 옛날, 순교자의 피로 물들었을 처형의 자리는 이제 장미꽃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지요.

대성당 앞으로 가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병인박해 때 순교한 황석두 루카(1813~1866)의 동상,

순교현양비와 순교터가 보이고

저 잔디밭 가장자리로는 '십자가의 길'이 이어집니다.

향청에 이어 공소로도 쓰였던 한옥 앞에는 황석두 루카 성인의 묘소가 있고

그 옆에는 반석 위의 다섯 성인이 등장합니다.
여기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안토니오 주교, 베드로 신부, 루카 신부와 황 석두 회장, 장 주기 회장이 처형장인 충남 보령의 갈매못으로 압송될 때 잠시 쉬었다는 자리입니다.
원래의 반석은 절두산 순교기념관으로 옮겨졌답니다.
이방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그 신앙을 지키려 목숨을 내놓았던 조선의 선비를 보면서 종교의 힘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낡은 연풍향교의

외삼문은 닫혀 있었고

담밖에서는 강의실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그 뒤로 내삼문이 보입니다.
내삼문 뒤, 공자를 모신 대성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가에 '김홍도씨름장'이라는

이 건물 이름은 조선시대의 화가, '씨름"으로 알려진 김홍도가 잠시 이 마을의 현감으로 근무했던 이력 때문이겠지요?
정조의 두터운 신임 속에 연풍현의 현감으로 부임했던 파격적인 인사였지만 산간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서민의 생활은 그림의 좋은 소재가 되었을 듯합니다.

실제로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홍도의 '황묘농접도'의 題詞(제사, 그림에 곁들인 글귀)에 관현감(官縣監)이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어 그가 연풍현감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이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네요.

마을 입구 광장에는 김홍도의 그림 복사본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해학적이며 친근한 느낌의 풍속화들, 서민의 일상을 표현한 그림인 '벼타작'과 '빨래터',

'길쌈'도 있습니다.
연풍성지의 담에도, 면사무소의 뜰에도 그의 그림이 보였던 김홍도의 동네입니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
석양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습니다.

이번 여행은 조령자연휴양림의 새로 생긴, 버섯 이름의 숙소를 2박 예약했던 행운에서 시작한 것.
방에 들어서면서 산뜻한 편백향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입식의 실내,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짙은 숲과 활짝 핀 백일홍,
그 앞으로 폭우에 불어난 개울물이 흘렀지요.
베란다에도 티 탁자가 있고 방 옆으로는 바비큐까지 할 수 있는 전용 뜰이 있습니다.
제3관문 쪽, 2인실인 '숲 속의 집'은 작아도 천창과 족욕탕도 있는 입식의 오밀조밀 완벽한 숙소,
거기보다 2배 큰 이 숙소는 숲으로 나가지 않아도 숲을 즐길 수 있는 온전한 휴식의 장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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