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수 숲길과 성읍 마을, 김영갑의 두모악
다양한 화산지형과 지질자원을 가진 제주는 섬 전체가 지질공원이랍니다.
그중 대표 명소는 13개,
한라산, 선흘곶자왈, 만장굴과 우도, 성산 일출봉, 천지연폭포와 서귀포층에 중문 대포해안의 주상절리대, 용머리 해안과 산방산, 수월봉과 비양도, 삼다수 숲길 중에서 오늘은 교래 삼다수 숲길에 왔습니다.
오래전 사냥꾼과 말몰이꾼이 이용했던 오솔길을 활용, 조성한 이 숲길은 '수목이 지닌 경관과 가치, 난대 낙엽활엽수림의 교육적 활용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제1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상을 받았답니다.
봄에는 복수초 군락, 여름에는 산수국, 가을에는 하천을 따라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다네요.
주차는 교래리 종합복지회관, 탐방로 입구 등 여러 곳에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교래리 소공원에 주차하고 시멘트 포장의 마을길로 들어섰습니다.
돌담과 삼나무,
동백꽃이 피어 있는 길입니다.
몇 군데 표고버섯 농장 앞을 지난 탐방로 입구에서
약도를 보고 3코스로 진행하였지요.
8.3km, 2시간 30분의 거리입니다.
오래전, 걸었던 길이지만 오늘 와보니 많이 달라져서 생소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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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의 목련 자생지를 지나면
울창한 삼나무숲과
조릿대 무성한 활엽수림이 이어집니다.
1코스 분기점을 지나니
아아용암(딱딱하고 거친 용암) 지대인 천미천이 나왔지요.
용암이 흐르고 난 후 천미천에는 지속적인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바닥에 작은 돌개구멍을 비롯한 다양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폭우 때만 물이 흐르는 이 건천은 한라산 1100 고지에서 발원, 교래리와 성산읍을 거쳐 표선면 하천리 바다로 이어지는 길이 25.7km의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입니다.
곧 2코스로 들어가는 분기점을 지나
한동안 편백나무숲을 지나면
노루 등 산속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내려오는 깊은 산속 옹달샘, 노릿물(노루 물)이 나옵니다.
삼다수 숲길 아래 지하에는 천연 화산암반수인 삼다수의 수원지가 있답니다.
제주의 화산암반수는 빗물이 지하의 여러 겹 용암과 송이층(구멍이 많은 현무암)을 통과하면서 정제됩니다.
편백나무, 단풍나무 군락지를 지나는 길 끝무렵에는 경찰숲터가 보입니다.
제주 경찰이 40여 년, 심고 가꾸었다는 이 길이 삼다수 숲길의 일부로 잘 활용되는 것처럼
역사 속의 恨도 잘 치유되기를 바라면서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참식나무의 특이한 꽃이 보이는
이 길은 어느 계절에 와도 좋을 숲길입니다.
거기에서 제주 민속마을인 성읍 읍성에 왔습니다.
제주 성읍 마을에는 성 안에 관청과 객사, 정의향교, 느티나무와 팽나무, 돌하르방이며 마을의 민가 등이 남아 있어 제주도의 민속과 문화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로
성의 규모는 동서 160m, 둘레 1200m, 높이는 3m 정도에 남, 동, 서의 성문이 있고 성담 둘레길은 있지만 성벽 위를 도는 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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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으로 들어가니 각각의 집주인 이름을 달고 있는 제주 전통 초가의 전형,
바람에 대비한 지붕 모습과 화산석을 섞어 만든 튼튼한 벽, 집을 둘러싼 검은 돌담 등, 제주 특유의 가옥이 많았습니다.
그중 몇 채는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답니다.
대장간집 가옥 앞에는 일반 서민의 사용을 금지했다는 원님물통이 있었지요.
물이 귀한 지역이었던 듯, 인근의 노다리방죽에서 여기까지 물을 끌어들여 땅속에 묻은 가시나무로 걸러서 사용했다네요
한쪽에는 돼지우리 돌담 위에 화장실을 두었던 제주의 옛 풍습이 재현되어 있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이의 표정이 재미있었거든요.
조선 시대 지방 교육기관이었던 제주의 정의향교, 공자의 초상을 모신 대성전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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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도 습도계롤 설치, 보존하는 유리 상자 안의 '정의현 객사 전패'가 있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전국의 객사와 그 안에 왕의 초상을 대신해서 세워두었던 '전(殿)'자 목패를 제거합니다.
그 와중에서 당시 정의향교 재장(齋長) 오방렬은 이 목패를 지키려다 일경에 체포되면서 형독으로 죽었습니다.
전패는 객사에 모시면서 고을의 원이나 이 지역을 오가는 벼슬아치들이 임금을 대하듯 배례하던 조선 왕조의 상징이었지요.
향교 옆에 서문이 있는
이 마을에서는 체험민박 등 여러 가지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www.jeju.go.kr/seongeup/index.htm
제주특별자치도
다함께 미래로, 빛나는 제주
www.jeju.go.kr
성 밖에도 상가가 많았지요.
'이 외진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시린 곳,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
주인은 먼 여행을 떠났고
그의 사진만이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김영갑의 사진 갤러리, 두모악입니다.
그의 작업실,
그의 작품들!
다시 뜰로 나가면
그가 사랑했던 제주의 오름을 상징하듯 작은 언덕이 있고 그 안에 주인 잃은 빈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사진기를 걸친 그가
긴 침잠에 들어 있네요.
그의 오랜 지기였던 조각가는 이 갤러리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 놓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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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 벚꽃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
이렇게 아름다운 봄에 그는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영갑은
1985년 제주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이곳에 정착,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가 사랑하는 제주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지요.
건강을 돌보지 않고 사진에 집중하면서 17회의 사진전과 사진집, 자전 에세이를 남겼지만 지병인 루게릭이 악화되면서 2005년 마지막 전시회를 끝낸 봄날, 48세로 죽었습니다.
'제주를 만나 행복했고 사진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꼈다'던 그는 제주의 바람까지도 사랑했던 사람!
폐교를 활용한 갤러리 두모악에서는 그가 찍은 수만 장의 필름과 사진 작품을 보관하고 있으며 사진은 계속 교체, 전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