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오름과 멋체왓 숲길
서귀포에서 남조로의 사려니숲을 지나 이번에는 붉은오름에 왔습니다.
방문자센터에서 삼나무데크를 따라 걷다가 야자매트로 이어지는 1.7km, 1시간 30분의 적당한 거리에 부담 없는 산길입니다.
쭉 뻗은 삼나무 숲,
햇살을 받은 새 잎이 싱그러웠네요.
여기 '붉은오름'은 오름의 흙이 유난히 붉다고 하여 붙은 이름, 대부분 붉은 화산송이인 스코리아로 덮여 있습니다.
삼나무와 해송이 가득한 숲을 지나면
중턱부터는
낙엽수림인 쥐똥나무, 가시나무, 졸참나무 등의 자연림이 이어집니다.
정상 전망대(569m)에서는 바로 앞의 말찻오름, 그 뒤로 물찻오름과 한라산 정상이 보이고
제주경주마육성목장의 녹색 초원에
머체왓 숲과 거린악,
논고악 등 수많은 오름이 보입니다.
분화구(굼부리)를 돌아 나오면
상잣성 숲길로 가는 삼거리가 나오지요.
잣성은 조선 시대 제주의 목초지에 만들어놓은 목장경계용 돌담으로 한라산 중턱의 잣성은 상잣성이라 불렀다지요.
해안가에는 하잣성이 있었고 농업과 목축을 같이 하던 지역에서는 그 돌담을 중잣성이라 했답니다.
상잣성은 우마가 한라산 삼림 지대로 들어갔다가 얼어 죽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 쌓은 것이고
하잣성은 우마가 농경지에 들어가 농작물을 해치지 못하도록 쌓은 것이랍니다.
붉은오름 주변에는 좋은 관광지가 많습니다.
거기에서 한남리에 있는 머체왓 숲길로 이동,
안내센터의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꽃잎 장식의 비빔밥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숲길로 들어갔습니다.
센터에서는 식당 외에 2층의 야외족욕장과 건강차 카페도 이용할 수 있고 머체왓 숲길 안내와 해설도 들을 수 있습니다.
월요일은 휴무.
여기는 머체왓 숲길(6.7km, 2시간 30분)과 머체왓소롱콧길(6.3km, 2시간 20분), 서중천탐방로(3km, 1시간 20분)의 세 가지, 모두 원점 회귀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곳입니다.
머체왓에서 머체는 '돌', 왓은 '밭'으로 '돌과 잡초가 우거진 길'이고
소롱콧은 '작은 용을 닮은 지형'이라서 붙은 이름으로 모두 제주어랍니다.
우리는 왼쪽으로 나가는 머체왓 숲길을 걸었습니다.
안내센터 - 저수지 - 느쟁이왓다리 - 방애혹 - 제밤낭기원쉼터 - 야생화길 - 조록낭길 - 머체왓전망대 - 산림욕치유쉼터 - 머체왓옛집터 - 서중천 전망대 - 올리튼물 - 안내센터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숲으로 나가는 풀밭 뒤로 한라산이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이었지요.
솔숲과 억새길을 지나
저수지 옆의 시멘트 길을 한동안 걷다가 다시 숲길로 들어서서 느쟁이왓다리를 건넜습니다.
'메밀밭을 지나는 다리'라는 뜻으로 여기는 예전에 화전민들이 메밀농사를 짓던 곳이었답니다.
땅이 워낙 척박해서 그들은 다른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네요.
나무계단을 지나
방아로 찧은 것처럼 가운데가 둥글게 꺼져 있는 형태의 땅, 방애혹을 지납니다.
잡목이 제멋대로 퍼져 있는 울창한 원시림 안에는 관중의 군락지도 있습니다.
대숲 역시 사람이 살았던 흔적.
예전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집 주변에 대나무를 심어서 다양한 생활도구를 만들었답니다.
제밤낭기원쉼터의 제밤낭(구실잣밤나무)는 숲 속의 거대한 바위를 뚫고 나온
다섯 개의 나무 기둥이 한라산을 가리키고 있었지요.
사람들은 이 신령스러운 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며 하나하나 돌을 쌓았습니다.
조록낭길과 제밤낭기원쉼터 사이에는
야생화길이 이어진다지만 아직은 이른 시기!
그래도 조록낭길(동백나무숲길)에는 여전히 동백꽃이 남아 있었네요.
떨어진 동백꽃은 땅 위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조망대로 올라가니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이 무성하여 거기 있는 넓은 평상은 조망용이 아니라 쉼터라는 느낌.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의 끝없는 초록 들판에 즐거워하면서
산벚꽃을 보며 다시 목책 안으로 들어갑니다.
숲의 무성한 삼나무, 편백의 향기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줍니다.
다시 초지가 이어지면서 나타난
'말 임신 중, 조용히 지나가세요' 팻말!
조심조심, 중잣성을 지나는 도중,
옛집터가 나왔습니다.
예전에 목축업을 하던 문, 김, 현 씨 등이 마을(머체골)을 이루고 살았으나 4.3 사건 당시 빨치산 토벌을 이유로 아랫마을로 소개되면서 아예 복귀를 못했답니다.
의귀초등학교 2학년까지 이곳에 살면서 학교에 다녔다는 문태수 할아버지는 지금 현재 한남리에 거주 중이라는데 벌써 13년 전의 근황이라니 이미 돌아가셨겠지요.
집터 배치도에는 돗통/통시(돼지우리),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로 구분되어 있는 집터, 우영팟(텃밭), 예전 올레길 들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울타리 돌담의 흔적 옆에는
깨진 사기그릇과 옹기 파편이 남아 있었네요.
숲에서 나와 임도로 들어서면
소롱콧으로 가는 분기점이 나옵니다.
서중천 전망대 옆을 지난 천변길, 바닥의 이 뿌리들은 생존의 힘겨움을 보여주고 있었지요.
용암이 흘러간 자리에 침식과 풍화가 만들어 놓은 저 바위와
오리가 둥지를 트고 노는 작은 연못, 올리튼물도 있습니다.
천천히 여유로운 3시간 반의 산책.
머체왓은 녹색의 초원과 넓은 목장, 원시림과 삼나무숲, 개천의 용암 흔적이며 화전민의 삶까지 제주의 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숲길이었습니다.
출구에서 바라본 느영나영낭(너와 나의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