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의 누와라 엘리야, 스리 파다, 하푸탈레
남인도 첸나이에서 항공편으로 스리랑카에 도착, 캔디에서 불교유적을 찾는 일행들과 헤어져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누와라엘리아에 왔습니다.
콜롬보 공항에서 환전하니 1유로에 14.5 스리랑카 루피.
1루피는 우리 돈으로 약 10원입니다.
고원의 서늘한 날씨를 기대했지만
12월이면 끝난다는 우기가 1월이 되어도 여전하여 누와라엘리야에서는 계속 비가 왔습니다.
그러나 남인도와 비교되는 짙푸른 숲과 울창한 가로수들, 깨끗한 거리에 사람들의 표정도 밝습니다.
이곳은 스리랑카 중부의 고원지대로 차 재배의 중심지입니다.
첫날의 내 숙소는 숲에 둘러싸인 외곽에 있었지요.
다음날 아침 일찍, 'Sri Pada'에 가기 위하여 이동.
누와라엘리아에서 Hatton까지 2시간, 거기에서 Maskeliya는 1시간, 다시 1시간 걸려 Dal Housie.
4시간 동안 완행 버스 세 번의 환승 끝에 비포장길을 달려 도착했습니다.
직접 가는 버스는 없습니다.
주요 도시를 잇는 길들은 포장이 잘 된 직선도로인데
산골마을 지선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짧은 길인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달 하우제에 도착 직전에는 버스 바퀴가 펑크 난 탓에 짐을 끌고 한동안 걸어야 했네요.
'Sri Pada(2230m)'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Adam's Peak라고도 불리는 세 종교(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입니다.
1월부터 4월까지의 순례기간 동안 많은 순례자들이 5200개의 계단을 걸어
저 꼭대기에 있는 사원에 찾아갑니다.
낮에는 그 순례길의 시작,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
영어와 힌두어로 쓰인 안내문을 보고
중간중간 걸려 있는 '부처의 발자국'을 구경하면서
답사.
밤 12시에 다른 순례자들처럼 그 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여 새벽 5시, 해발 2243m의 정상에 도착,
아침 일출과 부처님에게 바치는 공양 의식을 보고 내려 왔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계단 양쪽에는 가로등이 환하게 켜 있고 중간중간에 짜이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있어서 불편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정상에 도착한 현지인들은
얇은 옷에 맨발로 새벽의 바람과 추위에 떨면서도 경건하게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해가 뜨면서 보이는
사원 안, 큰 바위 안에 있다는 부처의 발바닥 흔적을 찾았지만 그 안은 너무나 어두워서 구경도 못했네요.
줄지어 들어오는 현지인들 때문에 오래 있을 수도 없었지요.
이곳은 스리랑카인들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다녀가는 최고의 성지랍니다.
늙은 아버지를 업고 그 긴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젊은이에
걷기도 힘든 그 오랜 시간 동안 들고 온 공양물을 불전에 바치는 모습에서
인간에게 미치는 종교의 힘을 생각합니다.
나는 자신이 믿는 대로 각각 부처와 시바신, 마호멧의 발자국이라 믿고
거의 고행과도 같은 과업을 이루려는 이 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보고 싶었네요.
그들처럼 다녀감을 알리는 종 한 번 치고 돌아서는 하산길,
길가의 가게에서 따뜻한 차이 한 잔 마시고 한밤 내내 5시간 동안 올랐던 길을
이제는 내려갑니다.
다시 누와라엘리야로 돌아와 열차를 타고
하프탈레로 가는 길 양쪽은 온통 차밭이었습니다.
싱그러운 초록빛 세상 속으로 열차는 천천히 들어갔습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Lipton's Seat'로 가기 위하여
하푸탈레에서 담바테네 공장까지 11km, 미니버스를 탔습니다. 요금은 20루피.
'Lipton's Seat'에 가기 전, 차 공장을 들여다보는 시간,
안내 그림에서는 동양의 차들과 함께 '실론 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독립 후 스리랑카로 국호를 바꿨지만 영국 식민시대의 옛 이름은 실론이었거든요.
차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네요.
영국의 식민 시절, 차 농장 노동자로 남인도의 이들 타밀 족을 많이 데려 왔지만 독립 후에는
70%를 차지하는 원주민 싱할리와 20%의 타밀 이주민 사이에 여러 문제가 누적되면서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답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행자들에게 친절했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보통의 인도인이었습니다.
차 공장 앞에서 툭툭이를 대절, 7km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깊은 산속에 들어왔습니다.
도착 무렵부터는 길이 엉망이어서 아예 툭툭이에서 하차, 한동안 걸어야 했지요.
식민 시대에 넓은 열대 밀림을 개간하여 자신의 차 왕국을 만들어냈던 영국인 맆톤이
자주 앉아 있었다는 'Lipton's Seat'는 사진 오른쪽의 정자 안에 있습니다.
입장료는 50루피.
전망대에서
이곳을 관리하는 한 노인이 끓여준 따뜻한 블랙티를 마시며 이 고원의 추위를 녹였습니다.
찾는 사람이 드문 듯, 오늘은 나까지 3명의 외국인이 찾아왔다고 했지요.
구름이 발아래 보이는 고원입니다.
산을 개간하여 만든 몇 개의 언덕은 모두 초록의 차밭이었습니다.